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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흥부 부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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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나는 하루에 버스가 세 번 들어오는 고향 마을을 떠나 대구라는 낯선 도시에서 누나들과 자취를 하게 되었다. 하루도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던 남산3동 달동네에 살던 시절 우리는 연탄가스를 한 번 마실 때마다 이사를 했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은 늘 남산3동 어디쯤이었고, 이삿짐이래야 리어카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될 정도여서 이웃들이 보따리 몇 개씩 같이 날라주면 끝나는 그런 이사였다. 연탄 한 장이 보일러였고, 전기밥솥이었으며, 가스레인지였었던 그 시절, 달성공원에 가서 거인 구경하는 것이 제일 큰 나들이였었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먹는 것이 가장 큰 사치였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가난을 극복하고 재벌이 된 사람이나 정치인들에게 가난했다는 것은 추억이자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가난은 사람을 비굴하게 혹은 악착같게 만드는 것이었고, 뒤돌아보면 아픔이 먼저 느껴지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부끄럽거나 한없이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때 연탄불 앞에서 까무룩 졸다가 태운 밥을 같이 먹으며 서로 위로해주던 누나들과 이삿짐을 날라주던 이웃들의 소박한 마음들을 생각하면 아리던 가슴이 다시 따뜻해지기도 한다.

흥부 부부(夫婦)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前)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金)이 문제리,

황금(黃金) 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

손발 닳은 처지(處地)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面)들아. (후략)

시인 박재삼은 앞에서 말했던 미묘한 가난의 풍경을 우리 고전 '흥부전'에서 흥부 부부가 박을 타는 장면에서 끄집어내고 있다. 사람들은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와서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난 속에서도 '없는 떡방아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는 낙천성을 잃지 않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서로를 위해주던 그 마음이 더 큰 보물이었고,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물질적인 부(富)는 있다가도 없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흥부 부부가 가졌던 그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면 물질적인 부가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인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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