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그물질하는 정부'

맹자가 제나라 선왕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유명한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맹자의 주장은 이랬다. 국민이 생업이 없으면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전제했다. 선한 마음이 없으면 국민은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스러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생업이 없어 선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 국민이 죄를 짓게 되고, 정부가 형벌을 가하면 그것은 정부가 국민을 '그물질'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최근 한 소비자단체가 '대구의 석유가격'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국제 유가가 하락하지만 정부가 국내 유가에 하락분을 반영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비판적이었다. 그럼에도 유가에 세금이 50% 이상 반영된 현실에 대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기류였다.

주유소 관계자는 정부가 좋은 의도에서 허용한 알뜰주유소가 오히려 주유소 간 경쟁을 유발해 업계는 더욱 어려워졌고, 결국 정유사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됐다고 개탄했다.

전문가가 내놓은 대책이 고작 유류 정량검사 기준인 20ℓ씩 주유하면 양을 속지 않고 주유할 수 있고, 여름철에는 낮보다 밤에 주유하면 더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기자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유가에 대해 이렇게 논란이 많을 바에는 차라리 유사휘발유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TV와 신문, 인터넷 곳곳에 자동차 광고가 판을 친다. 몇 푼 안 되는 할인혜택을 과포장해가며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막상 구매한 자동차를 운행하기는 쉽지 않다. 높은 유가 때문이다. 실제 기자가 살았던 아파트 주차장에는 평일에도 세워둔 자동차로 꽉 찼다.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사람들은 유사휘발유를 사용하지 않는다.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고, 차 성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유사휘발유를 제도적으로 끌어안는 방법을 찾았더라면 지금쯤은 꽤 안정성 있고, 효율성이 뛰어난 대체휘발유가 개발됐을 거란 게 기자의 생각이다. 서민들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유사휘발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한 고민 없이 법만 앞세워 처벌 일변도의 강경 정책을 펴는 것은 맹자가 말한 '그물질'과 뭐가 다른가.

생계형 강'절도사건만 봐도 그렇다. 최근 경찰청의 '강'절도 금전 소비 용도' 자료를 보면 전체 절도 건수 중 생활비 용도가 목적인 경우는 2011년 16.3%, 2012년 21%, 2013년 26.6%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절도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욱 증가하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절도 발생 시기별 통계(2012년 기준)를 봐도 한 해 중 10월에 2만9천847건이 발생해 가장 많았고, 12월(2만9천553건)이 뒤를 이었다. 맹자의 말을 빌리자면 정부가 생업을 마련해주지 못한 채 법만을 앞세워 생계형 범죄를 처벌하는 것이 바로 '그물질'하는 짓이다.

맹자는 정부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국민이 생업을 가지도록 해서 위로는 늙은 부모를 모실 수 있고, 아래로는 가족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국민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다. 2014년 오늘의 대한민국은 2천 년 전 맹자가 던진 화두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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