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빅 브라더' 유혹

집을 나서면 이웃보다 먼저 마주치는 눈길이 있다. 엘리베이터 안의 CCTV 카메라다. 렌즈 너머로 사람들을 감시하는 카메라는 도로, 골목길, 지하철, 버스, 상점, 사무실, 전통시장, 대형마트, 대중목욕시설 등 없는 곳이 없다.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 평균 83.1회 CCTV에 찍힌다. 여기에 자동차 블랙박스,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서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카메라의 감시로부터 숨을 만한 곳이 집 말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통해 예견한 '빅 브라더'(Big Brother)의 세상이 됐다. 개인들의 행적은 CCTV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메일, 메신저, 휴대폰 통화내역은 물론이고 개인의 동선(動線)도 위치추적 기술을 통해 빠짐없이 기록된다.

더구나 블로그, 인터넷 카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개인정보와 사진, 글 등은 본인이 삭제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용을 퍼 날랐다면 어찌할 방법도 마땅찮다. 방치되거나 주인의 사망으로 인해 을씨년스러운 '사이버 폐가'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라는 용어마저 등장했다. 사용자가 사망하면 미리 유언해둔 대로 인터넷상의 사진, 글들을 찾아서 대신 삭제해주는 '사이버 장례 서비스'가 외국에서는 등장했다.

미국 CIA 출신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비밀리에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통화기록을 수집하고 있다고 지난해에 폭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올 초 개최된 다보스 포럼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인터넷상의 개인정보 보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정 당국이 SNS 등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압수수색을 남발해 국민 사생활과 개인정보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우려감으로 카카오톡 등 국내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를 떠나 텔레그램 등 외국의 메신저 앱으로 둥지를 옮기는 '사이버 망명객'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 정보로 저장되고 이 기록을 들춰볼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면서 권력자들은 '빅 브라더'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가 최근 국내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검열의 욕망은 나약함에서 나온다. 검열하는 자야말로 나약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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