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미·소 군축협상 막후 역할 우스티노프

1970년대 미'소 간 군축협상에서 중요한 막후 역할을 했던 우스티노프(Dmitry Fedorovich Ustinov)는 1908년 오늘 러시아 사마라(지금의 쿠이비셰프)에서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다. 내전 동안 굶주리던 가족들은 아픈 아버지와 함께 사마르칸트로 갔고, 그는 10대에 소년가장 노릇을 했다. 1922년과 1923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뜨자 고아로 남았다.

1927년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1934년 레닌그라드 육군기술학교를 졸업한 후 건축기사로 일하다가 한 병기공장의 관리인이 되었다. 1941년 스탈린에 의해 병기담당 인민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군수공장을 우랄산맥 동쪽으로 철수시켜 독일의 침입을 피했다. 이후 병무장관(1946~1953)과 방위산업장관(1953~1957)을 역임했다.

전후에 소련의 병력을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그는 1952년에 중앙위원회의 정식위원이 됐고, 1957년 니키타 흐루시초프에 의해 부총리로 임명되어 계속해서 병기산업의 총책임을 맡았다. 1963년 최고 국가경제회의 의장 겸 수석 부총리가 되었다. 1976년 4월 국방장관 안드레이 그레츠코 원수가 죽자 그의 후임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동시에 정식 공산당 정치국원과 소련 육군원수 자리에 올랐다. 1984년 죽을 때까지 국방장관을 지내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석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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