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ㅋㅋㅋ클래식] 가난한 들판에도 꽃은 핀다-베토벤 (하)

영화 '카핑 베토벤'은 서두(序頭)를 현재에서 시작해 본격적인 이야기부터 과거로 돌아가 현재로 끝내는 비(非)연대기적인 전개로 이뤄져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이 곧 끝 장면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의 첫 장면은 베토벤이 임종하는 순간이다. "선생님 들리기 시작했어요." 안나는 그제야 비로소 고백한다. 새로운 제품이나 관습을 남들보다 미리 수용하는 사람을 더러 '얼리어답터'(Early adapter)라 한다. 베토벤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에서야 겨우 깨우친 그녀였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서는 나름 얼리어답터라 생각한다.

예술가에 있어서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을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가라 한다. 한자로는 전위(前衛) 예술가인데, 글자 그대로 앞에서 싸운다는 뜻이다. 옛날 프랑스군에서 전쟁 때 선두에서 상대의 움직임이나 위치를 파악하는 병사를 일컬어 아방가르드라 불렀는데 거기서 유래되었다. 속된 말로 총알받이라고나 할까. 적과 가장 가까이 있기에 가장 위험했었다. 분명 그들은 누구보다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나간 예술가들의 삶은 대체로 고달팠다. 적당히 앞서면 각광을 받기도 했지만 거기서 더 앞서나가면 인정을 받지 못해서 대부분 가난했다. 여기까지는 양호하다. 그보다 더 시대를 앞서 나갔던 사람은 쓰레기 투척을 받기도 했고 돌세례를 맞기도 했다.

베토벤은 말년으로 갈수록 속도를 더 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의 속도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세상이 답답했을는지도 모른다. 시민혁명을 겪고 시민주권이 올라가고 괴테를 포함하여 다양한 예술이 융성했지만 현악 4중주 '대푸가'(Grosse Fuge)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숱한 전위 예술가들을 봤지만 아직도 베토벤만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미 백남준, 존 케이지(John cage)를 경험했던 우리이기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실 터다. 더군다나 음악수업 시간에 하이든, 모차르트와 더불어 '고전파' 3대 작곡가로 배웠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외형이 아니라 정신으로 판단해야 한다.

역사를 볼 때는 오늘날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전개방식처럼 시대를 거슬러 적어도 1827년에서 봐야 옳다. 그렇게 보면 이전 편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은 당시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존 케이지가 살던 이 세상은 그나마 그를 예술가라 인정해주며 그 행위를 봐주기라도 했지만, 말년에 베토벤이 살던 세상 사람들은 그를 더러 귀가 고장 난 것이라며 측은해 했거나 혹은 홀대했다. 영화 대사처럼 베토벤은 자신이 당시 세상과 다음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통해 다음 세상으로 넘어갔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고전에서 낭만 시대로 옮겨갔다.

아방가르드의 역할은 전쟁에서 그저 앞서 멀뚱히 서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뒤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게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예술을 하겠다며 앞장선 사람들은 많았지만 베토벤만큼 새로운 길을 그렇게나 활짝 열어준 사람이 또 누가 있었을까. 그의 아방가르드한 삶으로 인해 이후 음악인들은 예술가라는 공동의 호(號)를 가진다.

이예진(공연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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