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인터스텔라

'다크나이크'(2008), '인셉션'(2010)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화려한 스펙터클로 세상 사람들을 홀리는 오락물일 뿐이라는 비난을 깨트릴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심오하며 품격 있는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며, 그런 영화는 과학, 철학, 미학, 사회학, 심리학이 집약된 훌륭한 예술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아카데미상에 블록버스터로도 후보에 오를 수 있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그의 신작 '인터스텔라'는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영위할 땅을 찾으려는 미래 인류의 고군분투를 다른 SF 영화다.

IMAX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전통적인 영화 찍기를 고수하여 영화에 진정성을 채운다. 디지털 특수효과는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장면으로만 최소화했다. 심지어 촬영은 이제 거의 생산을 중단해버린 필름으로 찍었다. 감독이 이렇듯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 이후, 영화가 현재를 찍고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역할보다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고 만들어내는 완전한 허구체로서의 기능이 점차 우위를 점하고 있다. SF 영화가 더 환상적이고, 더 스케일이 크고 거대하며, 더욱 비현실적이 되어가는 때에 제동을 걸고, 놀란은 미래 세계를 그리는 SF도 바로 우리가 사는 지금 현재를 반영해야 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인터스텔라'는 우주공간에서 우주선이 우아하게 춤추는 우주 오페라가 아니라 우주의 재난을 경고하는 무서운 재난영화다. 먼 훗날 지구는 처참한 환경문제에 짓눌려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곳으로 오염되어 버리고 만다. 세계 우주개발계획을 주도했던 미 항공우주국 NASA가 저질렀던 비리와 속임수가 다 까발려지고서, NASA는 해체되고, 지구의 식량 부족 상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다.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개발하여 대규모 이주를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인류의 절멸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공간에 불가사의한 틈이 열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새롭게 주어진 시공간을 탐험하며 인류의 새로운 거처를 구할 때가 임박함을 느낀다. 과거 파일럿이자 수리공이었던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한 채 인류라는 더 큰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을 위해 우주로 희망을 찾아 항해를 떠난다.

169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쿠퍼는 과학자들(앤 헤서웨이, 맷 데이먼)과 함께 새로운 행성을 찾는 여정에 나서고, 길을 잃고, 곤경에 처하고,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에서 벗어나고, 결국은 인류를 구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전통적인 영웅 서사의 틀을 따른다. 다시 자신의 자리로 귀환했을 때 영웅은 훌쩍 성장하여 진정한 영웅으로 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본심은 가족의 가치이다. 쿠퍼가 사랑하는 어린 자녀를 떼어놓고 여정을 떠나는 이유는 인류 구원이라는 거창한 소명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가 고통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환경 때문이다. 영화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보통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놓음으로써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에 현실성을 입힌다.

아이맥스로 전개되는 광활한 우주 공간은 과연 명불허전이다. 이런 영화는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성이론에 근거한 우주론을 기초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각본가인 조나단 놀란은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킵 손의 제자가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졸업까지 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이야기는 웜홀, 5차원 공간, 상대성이론, 중력 등 물리학이 증명한 이론들을 고스란히 녹여낸다. 우리는 우주 물리학이 시청각적으로 구현된 공간을 감상하는 경이로움을 맛보며 광대한 공간 안에서 주인공이 탄 우주선과 함께 춤을 춘다.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미국 패권주의, 백인 중심주의, 보수적인 가부장주의가 살짝 신경을 건드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우주 서사극이 주는 감명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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