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전탑 돈봉투' 前 청도경찰서장, 시공업체에 "돈 내라" 수차례 요구

관련자 14명 전원 불구속 입건…각북 주민들 "경찰 부실 수사"

지난 9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청도 각북면 주민에게 수백만원이 든 돈봉투를 돌린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이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또한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 직원 10명과 시공업체 대표 등 3명도 돈을 주고받은 혐의 등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청도 송전탑 돈봉투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9일 이 전 서장이 송전탑 공사 재개 이후 한전과 반대 주민 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한전 대구경북지사에 위로금 1천700만원을 강요해 주민들에게 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은 지난 8월 중순 L모(56) 전 한전 지사장에게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원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서 한전은 처음에는 공사를 찬성하는 주민들과의 형평성 문제와 선례를 남긴다는 부담 때문에 거절했지만 관할 경찰서장의 압박에 시공업체가 돈을 부담하도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전은 이에 따라 9월 초에 600만원, 추석 연휴 때 1천100만원을 경찰에 전달했다. 이 전 서장은 이렇게 마련된 1천700만원을 주민 7명에게 전달했지만, 주민들이 되돌려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 이 전 서장은 경찰 조사에서 "인명 사고 등 불상사를 예방하고 주민과 한전을 중재하기 위해 돈 봉투를 돌릴 생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한전지사장 등 직원 10명은 2009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시공업체 현장 소장으로부터 명절 인사비'휴가비 명목으로 100만~500만원씩 총 3천3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전 서장이 돌린 1천700만원과 한전 측이 받은 3천300만원의 자금 원천은 시공업체가 가짜 직원 20명을 만들어 매달 1천만~2천만원의 급여를 지급하는 형식으로 조성한 비자금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비자금 규모가 13억9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시공업체 대표 등 3명을 업무상 횡령 및 뇌물공여 혐의로 입건했다.

한편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는 '송전탑 돈봉투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에 대해 "경찰청이 이 전 서장과 한전 관계자, 시공업체 대표 등 14명을 불구속 송치한 것은 수사가 미온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사건 관계자 전원을 구속하고, 한전과 시공업체 간 뿌리 깊은 유착 관계와 비리 구조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청도 노진규 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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