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천장을 삼도장(三道場)이라 불렀다. 김천이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접점에 위치해 삼도의 농특산물이 모이는 물산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짐작게 하는 말이다.
조선 초기 김천지방 7개 역을 관할했던 김천역은 후기 들어 구미'성주'고령'합천'달성'대구 등 20여 개 속역을 관할하는 도찰방역으로 승격한다. 이에 따라 김천은 바야흐로 역촌이 갖는 사회'경제적인 정보력과 인구팽창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된다.
양란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조선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반상(班常)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종전 후 발생한 백성들의 대규모 이동과 농업 기반의 붕괴는 화폐의 유통과 맞물리면서 수공업과 임금노동자의 발생, 상인의 출현을 유도해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을 촉진시켰는데, 이것은 시장(市場)을 등장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한반도 남부, 최대 교통 요지에 입지해 경상남'북도를 아우르는 광역화된 교통'체신 업무를 관장하던 김천은 1700년대 들어 김천역을 중심으로 인마(人馬)와 삼도 물산이 집결하고 역 옆에 시장이 들어서 전국 5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한다. 평양, 개성, 강경, 대구, 김천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삼도 물산이 모이는 김천장
"오늘이 김천장날이렸다." 서울서부터 김천장의 위상을 익히 들었던 김천도찰방역장 이중환은 수하 역리 임 아무개를 앞세우고 이른 아침 민심 탐방을 겸해 김천장 구경에 나섰다.
역마에 올라 100여 보를 걷자 역 진입로부터 멀리 감천 백사장까지 까마득히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 장관이 펼쳐졌다. 이중환의 놀란 표정을 본 역리는 "짐전장(김천장)은 매달 1'5'10일 해서 5일마다 감천 모래밭에서 열리는데, 전국의 보부상과 장돌뱅이들이 목 좋은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밤길을 달려들 오다 보니 늘 이렇게 새벽이면 난전이 펼쳐집니다요"라며 김천장을 자랑한다.
드넓은 감천 백사장은 이미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강을 건너도록 나룻배를 잇대어 연결한 배다리도 내왕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감천을 가로지른 배다리를 보니 김천장 맞은편 마을의 지명을 배다리라 한 연유가 짐작됐다. 난전은 농소 못골에서 만든 뚝배기부터 어모 갈말의 왕골돗자리, 남면 부상에서 나온 명주, 어모 능점의 옹기, 추풍령의 메밀묵, 상주 곶감, 금산의 인삼, 무주 덕유산 산나물 등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이다.
이때 감천 모래밭 한쪽으로 흰 삼베를 펼쳐놓은 듯한 모습이 이중환의 눈길을 끌었다. 눈치 빠른 역리는 "생선을 말리는 겁니다요. 매번 장날이면 남해바다에서 잡은 조기나 갈치, 고등어를 배에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무을에서 나룻배로 갈아타고 이곳까지 와서 염장질을 한 후 저렇게 말렸다가 파는 것입지요"라고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중환은 내심 놀랐다. 내륙지방인 김천까지 남해 어물이 배에 실려 온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어물이 귀한 삼도 내륙의 거창, 무주, 영동, 상주에까지 김천장에서 어물을 공급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전국 최고의 우피(牛皮) 생산지
"이곳 사람들 상술이 보통이 아닐뿐더러 감천이 갖는 운하로서의 효용성도 대단하구나. 이제 소전(우시장)으로 가보자꾸나." 당시 조선팔도에서 첫손 꼽는 큰 규모의 우시장을 거느렸던 김천장 소전은 시장 끝자락 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농경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노동력의 주축인 소를 도축하거나 공개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그러나 이 시기에 들어 대단위 경작농의 출현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육식의 선호, 우피(牛皮)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우시장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100여 마리는 족히 됨 직한 황소와 송아지들이 백사장 이곳저곳 말뚝에 묶여 있고 걸쭉한 농지거리를 일삼는 거간꾼들이 흥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전은 다른 장보다 먼저 열리고 거래가 오전 중에 끝나는데, 늦게 마치면 소 판 돈을 가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화적떼한테 몽땅 털리기 때문이랍니다요." 묻지도 않았건만 눈치 빠른 역리는 소전이 일찍 열리는 이유에 대해 알려준다.
김천장은 삼도장의 위상에 걸맞게 전국의 거의 모든 농축수산물들이 예외 없이 몰려들었는데, 그중 단연 최고 거래량을 이룬 것은 소와 우피를 중심으로 한 축산물이었다.
그중 우피는 일제강점기 말까지 전국 최고 생산지로 이름을 떨쳤다. 김천으로 집결된 우피 중 일부는 일본과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소전 옆으로는 주막이 즐비하다. 역리는 얼마 전까지 역 노비로 있다가 나이가 들어 면천된 한 씨네 주막으로 말을 이끌었다. "나으리 갱시기 한 그릇에 탁배기 한잔하고 가시지요."
이중환은 뚝배기에 담겨 나온 갱시기라는 음식을 난생처음 대하는지라 수저를 들다 말고 적잖이 당황했다. "김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입니다요. 찬밥에 김치국물, 콩나물, 남은 반찬을 함께 넣고 끓여서 보기는 숭해도(좋지 않아도) 잡수실 만할 껍니다."
모양은 영 내키지 않았지만 수저를 들자 한 뚝배기를 순식간에 들이켤 만큼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릇을 비울 무렵 백사장 한쪽에서 갑자기 풍악이 울리더니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장날이면 종종 씨름을 하는데 오늘은 약물내기에서 유기 공방을 하는 김 초시 영감 아들이 달포 전 역과(譯科)에 합격했다고 송아지 한 마리를 내놓았답니다요."
◆전국 최고 김천 방짜유기
김천의 방짜유기가 서울의 내로라하는 사대부가에서도 최고로 친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온지라 만드는 공정을 보고 싶던 차에 김 초시 이야기를 들은 이중환은 호기심이 발동해 약물내기 김 초시 공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역리를 통해 사전에 신임 찰방의 방문 소식을 접한 약물내기 방짜유기공방의 최고참인 김 초시는 대문 밖까지 달려나와 찰방의 방문을 반긴다.
"소인이 5대째 가업을 이어 방짜를 만들고 있습니다. 왕실로부터 한양 내로라하는 고관대작 마나님들 댁치고 우리 물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습지요."
공방에서는 연신 풀무질과 망치질을 하며 제기와 곰방대, 요강, 화로 등 잡다한 생활용구들을 만들어 내느라 분주하다. 유기 공방을 둘러보고 장터로 나서니 어느덧 파장이 임박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시장통은 여전히 시끌벅적 흥정 소리로 요란하다.
"김천장이 번성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답니다요. 어느 유명한 지관이 말하길 김천의 지형은 모암산의 사모바위가 남자(신랑)이고, 맞은편 약물내기 끝자락의 할미바위가 여자(신부)인데 신랑과 신부가 마주 보고 혼례를 올리는 형국이니 얼마나 잔칫집에 하객이 많이 오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날이면 몰려든 사람들이 하객이고 또 잔칫집에서 이들을 접대하자면 그릇이 많이 필요할 테니 자연히 방짜유기가 필요해 이곳에서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요." 약물내기로부터 역관에 이르는 도로 좌우를 가득 메운 유기공방을 거쳐 돌아오니 벌써 고성산 자락으로 해가 기울었다. 공동기획 김천시
김천 신현일 기자 hyun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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