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1993년

삼성 라이온즈가 통합 4연패에 성공했다. 삼성이 워낙 잘하다 보니 여유가 생긴 탓일까? 패배한 넥센 선수들에게 괜히 동정도 가고 그런다. 5차전에서 경기를 날리고 슬픈 눈빛을 보였던 손승락이 대구 출신이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보도를 대여섯 자루나 차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패배한 넥센을 보고 있으면 1993년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온갖 종류의 불만이 야구장을 통해서 분출되던 그 시절, 나도 나만의 억울함을 가지고 야구장 구석에 앉아 있곤 했는데 당시의 삼성은 그 울분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증폭시키는 마법을 부리던 팀이었다. 1982년, 84년, 86년, 87년, 90년의 울화통을 복리로 이월받아 시작한 1993년,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그 스트레스를 일거에 날려버릴 천금의 기회를 잡는다. 그해의 상대팀은 삼성에 2번이나 하극상 패배를 안겨준 해태 타이거즈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삼성은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팀이었다. 홈런왕과 MVP를 수상한 김성래, 그 김성래보다 더 좋은 생산성을 보였던 신인왕 양준혁, 정교한 타격과 수비로 대구의 내야를 촘촘하게 메웠던 류중일과 강기웅, 6번타자치고는 화려했던 이종두와 3할 중견수 동봉철까지가 돌격라인이었다. 또한 달구벌 에이스 김상엽과 좌완 강속구 투수 김태한, 거기다가 지역감정 해소에 일조했다는 광주 소년 박충식에 느릿느릿 승리를 챙기던 성준까지 거느린 마운드는, 그전까지 에이스였던 류명선을 중간계투로 보낼 만큼 양과 질에서 손색이 없는 방어라인이었다.

그러면 뭐하나? MVP고 홈런왕이고 타격왕이고 3할이고 선동열 공을 치지를 못하는데 2점대 팀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진이 있으면 뭐하나? 2루를 제 집 드나들듯 뛰는 이종범을 잡지 못하는데. 풀 하우스를 들고 포 카드에게 밟히는 그 원통함은 정말 야구라는 스포츠에 환멸을 느끼게 할 만큼 강한 것이어서 이제 다시는 야구 안 본다는 맹세를 당시 이 분지에서는 너도나도 하곤 했다.

그때 소년이었던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몰랐을 사실은, 삼성이 통합 4연패를 이루는 미래가 아니라 1993년 이후에도 20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러갈 것이라는 점이었을 거다. 삼성이 제국을 건설한 현재, 이 이후에도 20년의 세월은 또 흘러갈 것이고, 그 세월 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넥센의 영웅님들, 실망하지 마시라. 영남대 출신의 미남 클로저가 그 세월 어느 편에서 우승을 마무리하고 포효하는 장면이, 왜 없겠는가? 좌절과 자괴감만 주던 1993년의 저들도 이제 늙어 제국을 건설한 명 지휘관들이 되어 돌아왔을진저.

박지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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