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계소리 높던 골목, 알고보니 근대 역사가…재생을 위한 망치 소리, 북성로

상업주의 논리 아닌 함께 살기, 새 '동네 문화' 만들기 한장

대구 북성로를 아우르는 단어는 '재생'이다. 재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잘 다듬는 작업이다. 최근 북성로는 공구골목을 중심으로 숨어 있던 근대 역사를 깨우는 재생 작업이 한창이다. 이곳에 둥지를 튼 새 이웃들도 이러한 가치에 공감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드는 또 다른 가치는 상생이다. 비용 문제로 고민하는 젊은 예술가에게 전시회 장소를 무료로 대여하고, 다른 식당의 매출 감소를 걱정하며 같은 음식을 판매하지 않는 행동은 수익을 위해 무조건 규모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북성로에 새로운 '동네 문화'를 만들어 가는 새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믹스카페 북성로, 문화로 상생하다

"또 커피숍이야?"

북성로 공구골목 가운데 문을 연 '믹스카페 북성로'(이하 믹스카페)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자. 이곳은 뻔한 커피숍이 아니다. 가게 앞 유리창에 적힌 '북성로 주민 50% 할인' 문구가 이곳의 운영 가치를 말해준다. "카페 이름이 '북성로' 잖아요. 동네 사람한테 공짜로는 못 주더라도 이 정도는 깎아줘야죠." 믹스문화클럽의 김헌재(44) 이사가 말했다.

두 달 전 문을 연 믹스카페는 믹스문화클럽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스터디룸과 다다미방, 3층은 갤러리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이 열린다. 믹스문화클럽은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와 대학교수, 예술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 10여 명이 문화를 섞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다. 원래는 협동조합으로 등록하려 했지만 법규에 얽매이기 싫어 자유 모임을 택했다. 이 목표를 이룰 장소로 북성로를 선정했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을 모았다. 1차 목표가 돈벌이였다면 북성로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김 이사는 "북성로는 시간이 만든 작품"이라며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공구상의 거칢과 북성로의 예스러움에 매력을 느꼈고,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장소에서 새 건물을 뚝딱 지을 수도 있었지만 역사가 담긴 적산가옥을 찾아서 리노베이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건물은 존재 자체가 역사다. 2층과 3층짜리 건물이 붙어 있는 적산가옥은 각각 1910년, 1950년에 지어졌다. 허물어진 적산가옥의 옛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며 리모델링한다는 조건으로 건물주와 6년 장기 임대 계약을 맺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원래 있는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재생이다. 원래 한 달 반을 예상했던 공사 기간이 넉 달을 넘겼고, 비용도 그만큼 늘어났다. 페인트칠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난 벽과 나무 창틀은 옛 건물에 있었던 것 그대로다. 1층 커피숍 계산대 앞에 있는 방공호는 와인 저장고로 변신했다.

믹스문화클럽이 중시하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다. 믹스카페가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공구골목 사람들은 크게 반기지 않았다. 임대료가 올라가 세 부담이 커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믹스카페는 소통의 부재가 오해를 낳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북성로 공구골목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다. '북성로 주민 커피 값 50% 할인 정책'도 이렇게 탄생했다.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규모가 크지만 간단한 빵 외에 '밥'을 팔지 않는 것도 주변 식당 매출에 타격을 줄까봐 우려해서다. 인터뷰 도중 밥 쟁반을 든 아주머니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김 이사는 "손님에게 배달하는 밥"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들이 사랑받는 비결이 여기 있었다. "카페에 와서 '식사는 안 파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주변에 괜찮은 식당 몇 곳을 선정해서 거기서 밥을 배달해서 먹을 수 있게 했어요. 식당 주인들은 밥을 팔고, 우리는 커피를 파니 상생하는 거죠. 마당에 있는 꽃도 이웃 주민이 주고 간 거예요."

믹스카페 3층에는 갤러리가 있다. 이날은 신진 작가들이 내놓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김 이사는 "이 갤러리는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갤러리를 무료로 임대하고 작품이 판매되면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운영한다"며 "아직은 매달 적자가 나고 있지만 앞으로 믹스카페의 가치를 알고 많은 분이 찾아주신다면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 역사 위에 만든 '문화 마을'

대구 중구 종로초등학교 뒤편. 이곳에 자리 잡은 '더스타일' 게스트하우스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 주변에 젊은 여행자들이 모여들면서 조용했던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북성로문화마을협동조합'(이하 문화마을 협동조합)은 더스타일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협동조합은 올해 시에 등록했지만 준비는 1년 반 전부터 진행됐다. 문화마을 협동조합 이사장인 김성훈(43) 씨가 단체를 만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3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주민 자치가 발달한 마을을 많이 다녔어요. 그때 '우리는 왜 못할까?'하는 질문을 많이 했고, 그 이유를 우리나라 도시 개발에서 찾았어요. 담장이 높아지고,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점차 사라진 거죠. 게스트하우스를 연 것도 지역 주민과 타지인, 외국인들이 만나는 장소가 생기면 마을의 변화가 빨리 올 거라고 생각해서였어요. 북성로는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라 도심 근대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재생하는 곳이잖아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마을 공동체를 내가 태어난 곳, 올드 타운인 북성로에서 다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취지에 동의한 사람들은 많았다. 생긴 지 1년도 안 된 협동조합에 조합원만 100명이 넘는다. 건축가와 음악인, 댄서, 바리스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진 사람들이 조합원으로 등록했다. 조합원들의 다양한 재능을 융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이 에너지로 마을 문화를 바꾸는 것이 공동 목표였다. 올해 여름 열린 '대구 물총축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파는 '글로벌 플리마켓',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 강좌들은 협동조합이 만든 활동이다. 김 씨는 "물총축제는 적자 볼 생각하고 한 행사였는데 몇 십만원 흑자도 남겼다"며 웃었다.

최근에는 새 이웃들이 북성로로 모여들고 있다. 근대 역사 위에 젊은 문화를 쌓는 작업이다. 믹스카페 북성로, 적산가옥과 한옥을 바꿔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판 게스트하우스, 폐자전거를 이용한 문화 공간인 장거살롱과 카페 삼덕상회, 북성로 공구박물관이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구성원들이다. 또 얼마 전 협동조합 조합원 한 명이 일본강점기때 지어진 창고를 리모델링해 레스토랑 '키친 1916'을 북성로에 열었다. 김 씨는 "문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라며 "앞으로 북성로에 진짜 '마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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