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반야월에 해가 뜬다

반야월(半夜月)은 대구시 동구의 행정동인 안심(安心)의 별칭이다. 현재 율하동, 신기동, 각산동, 신서동 등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다. 반야월. 그 이름만으로도 고풍스러운 이곳은 그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고려 태조 왕건의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왕건은 927년 대구 공산에서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였지만 대패한다. 왕건은 신하인 신숭겸 장군이 목숨을 던져 포위망을 뚫은 덕에 적진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계속 동쪽으로 달려 부하들을 겨우 수습하고 보니 어느덧 한밤중(반야'半夜). 달(月)이 훤하게 길을 비추고 있었다. 왕건은 적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심(安心)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충신을 잃고 도망가는 길을 비추는 그 달이 얼마나 처량했을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것이 반야월이라는 이름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이 반야월이 요즘 들썩거리고 있다. 대구 혁신도시 덕분이다. 대구에 이전하는 12개 공공기관 중 한국가스공사, 한국감정원, 신용보증기금,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중앙교육연수원, 한국정보화진흥원, 중앙신체검사소 등 10개가 혁신도시에 새 청사를 짓고 '대구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대구 혁신도시는 대구의 새 성장동력으로 평가된다. 10개 기관의 임직원만 3천여 명, 업무차 방문객이 연간 30여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이 25%에 그치고 있지만, 머지않아 대구를 터전으로 삼기 위해 전 가족이 이주하는 임직원들이 늘 것이다. 십수 년 전부터 사람이 떠나는 도시라고 자조하던 대구에 모처럼 대규모 인구가 유입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혁신도시가 가져올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 공공기관들이 이전함으로써 인건비, 사업비, 지방세, 건설비 등 2조5천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예상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서 집을 마련하고, 물건을 사고, 자녀들을 키울 테니 장래 가져올 경제적 가치는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좋은 일자리가 생김으로써 지역 청년들의 고용 증진에 적잖은 이바지를 할 것이다. 하지만 대구 혁신도시가 지역사회의 이런 기대에 부응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은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당신들도 대구 기업이니까' 식으로 다그치듯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족 동반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미혼, 배우자 직장, 자녀 교육 때문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대구시는 이런 어려움을 포용하고, 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혁신도시 덕분에 대구경제가 벼락처럼 나아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이 대구 인구 몇 천 명이 늘어난 정도로 그쳐서도 안 된다. 노무현정부 때 혁신도시 이전이 결정된 데는 국토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기여라는 중대한 사명이 있다. 대구혁신도시는 산업지원, 교육'학술, 그린에너지, 의료 등 이전 공공기관을 분야별로 묶어 지역 연관산업과 연계 성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와 함께 지역 그린에너지 산업을 성장시키는 구상이다.

또 하나. 정주 인프라의 완비도 다는 아니다.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 대구라는 타향에서 정(情)을 붙이고 대구 사람 특유의 의리를 알아가도록 따뜻하게 안아주는 지역기관, 지역민의 자세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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