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를 만났습니다. 학부모는 크게 두 모습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자신이 대한민국, 특히 교육의 중심인 대구의 교육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사람들, 현재의 교육이 분명 잘못된 시스템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것이었습니다. 현재 주어진 현실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사람과 잘못되었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결국 아이들은 동일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셈이지요.
전자는 지금의 경쟁구조가 더욱 명확해져야 하고, 승자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더 커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조건들도 노력한 결과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논리였습니다. 그게 현실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후자는 조금 달랐습니다. 스스로도 아이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지금 뒤처지면 영원히 패배자로 살아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현재의 고통스러움은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할 때의 그 현실이 의문이었습니다. 무한경쟁을 하고 있는 현실도 현실이지만 그 결과로 생산되는 풍경도 현실입니다. 알고 보면 무한경쟁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강제로 만들어낸 현실일 뿐이지만 그 뒤에 나타나는 풍경은 무한경쟁이든, 아니든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입니다.
한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약 60만 명입니다. 소위 학부모들이 말하는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대의 일부, 연고대의 작은 일부, 그리고 서울 소재 몇몇 대학의 더 작은 일부, 지방 소재 유명대학의 더 작은 일부에 입학해야 합니다. 숫자로 말하면 약 3만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만 명의 5%인 셈이지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60만 명이 모두 수능 390점 이상을 획득했다 하더라도 서울대 정원은 2014년 기준으로 3천124명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인 셈이지요. 최근에 더욱 강화되고 있는 특목고나 자사고, 특정 지역의 편중 현상을 고려하면 3만 명에서 1만5천 명으로 떨어집니다. 전체의 2.5%인 것이지요. 결국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행복은 2.5%의 가능성을 지닌 행복입니다. 그것이 강제된 현실보다도 훨씬 의미를 지닌 실질적인 현실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직업은 2만 개 정도라고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1만 개 정도인데 비공식적인 직업까지는 그 두 배 정도인 것이지요. 그런데 소위 학부모들이 말하는 직업은 20개 남짓합니다. 20개는 제로섬입니다. 부모의 직업을 받아들이거나 부모의 능력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확대되는 현실을 참고하면 10개 정도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2만 개의 직업 중에 10개를 제외한 1만9천990개의 직업, 다시 말하면 대부분 학생이 결과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직업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인생의 낙오자가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현실입니다.
무엇이 '현실적'인지는 명확해집니다. 이제 2.5%의 가능성, 10개의 환상에 벗어나는 것이 현실적 판단입니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지 말고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경쟁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2.5%를 제외한 97.5%를 통해서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입니다. 처음부터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소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함께 아이들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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