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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생각] 옛 친구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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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름 끝에 '~빠이'를 붙여 부르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라는 애는 ○○빠이였고, △△라는 친구는 △△빠이라고 불렸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누가 먼저 시작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린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동질감과 친근함의 표현이었던 모양으로, 한동네에 사는 다른 또래들도 있었지만 그 아이들과는 그런 호칭을 나누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소위 그 '빠이 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은 너덧 명뿐이었다.

한 해에, 혹은 다음 해에 한두 살 차이로 태어나 20년 가까이 모두 다 반경 100m도 안 되는 한마을에서 자란 사이였다.

노상 아침 밥숟가락만 던지고 나면 해가 넘어가는 어둑 저녁이 되어 어른들이 찾으러 나오실 때까지 붙어다녔는데, 뭘 하며 그렇게 놀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뒷동산에 소나무 가지와 가시나무를 얽어 '본부'라고 지어놓고 온 산을 헤매며 총싸움을 하던 기억은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렇게 지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누구는 직장으로 또 누구는 대학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나도 직장을 따라 타지로 나가며 그만 친구들과의 끈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늘 마음 한구석에는 그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가만히 간직되어 있었지만 그 위에는 세월의 먼지 또한 한 켜 한 켜 쌓이게 되었다.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한 한 읍내 친구의 상가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잃어버렸던 그 끈의 한 끄트머리를 다시 잡게 되었고 그 빠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지기도 하고,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이기도 하였지만 우린 곧장 30여 년 전, 또 그 너머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동안 서로가 다른 길 위에서 사느라 만나지 못했어도, 바로 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처럼 어색하지 않았다. 그건 추억이라는 공통분모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뭉쳤던 수박 서리, 사과 서리 무용담부터 소 먹이고 나무하고 꼴 베러 가던 이야기까지, 만나기만 하면 옛 추억을 풀어놓기에 바빴다.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빠이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앞을 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게 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새로운 일을 찾아내고 추구하기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해온 일들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날씨가 추워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뭔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 어릴 적이 그리 풍족하고 편안했던 삶은 아니었는데 돌아보면 그래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그리고 그 회상의 중심에 있는 건 아무래도 옛 친구들이다. 그들은 내 생의 가장 맑았던 시기를 함께한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아 힘들고 지쳤을 때 그 소중한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법이다. 그들은 내 영혼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힘이다. 날씨가 차가워지고 바람이 불 때일수록 그 친구들이 더 소중해진다.

홍헌득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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