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대한항공과 청와대

청마(靑馬)에서 청양(靑羊)의 해로 넘어오면서 대한항공과 청와대만큼 세간의 이목이 쏠린 곳도 없는 것 같다. 아마 올 한 해도 이 두 곳의 동태가 두고두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

'땅콩 회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구속되면서 새해를 구치소 안에서 맞았다. 기업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제 영업에서도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는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은 기업 문화 혁신을 위한 '소통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환골탈태의 각오로 경영시스템 혁신에 나선다는 각오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진정성을 얼마나 많은 국민이 믿어줄지 의구심이 든다. '땅콩 회항'은 기업문화보다는 재벌 오너 일가의 비뚤어진 특권의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조 씨 일가가 경영에서 손을 떼면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의 기업문화는 저절로 바뀔 것이다. 문제의 근본 뿌리가 자신들인데 '혁신'을 빌미로 애꿎은 직원들만 못살게 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추측건대,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동생 조현민 전무의 언행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조 전무는 "(최근의 사태가)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고 했다가 사과를 했고, 청마(靑馬)의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를 언니에게 보낸 것이 밝혀져 또다시 서둘러 머리를 숙였다. 사과의 진정성을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런 '말뿐인 사과'는 여론의 압력에 따른 몸짓 일뿐 진심이 아니다.

조 씨 일가의 이런 행태는 그 아버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2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정석인하학원 소속 인하대에서 시민단체가 시위할 때 학생들의 도서관 출입을 통제했다가 항의를 받자 "학생이 주인이 아니다. 이 학교의 주인은 나다. 여긴 사립학교이고 사유지"라고 말했던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이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으니,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결국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문화가 아니라 오너의 가족문화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나라 재벌들의 감추어진 민낯일 수도 있다.

이런 대한항공이 청와대와 오버랩된다면, 대통령과 청와대 근무자들이 많이 섭섭해 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언론에 회자한 청와대 그 누구도 조현아 씨처럼 구체적 잘못이 드러난 사람이 없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은 허위이고, 구속된 박관천 경정이 짜깁기해 생산한 뒤, 조응천 전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의 친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측에 건네지면서 정권 내 권력암투설로 번졌다는 게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 내용이다. 검찰의 수사내용과 청와대의 반응을 보면, 청와대가 사람을 잘 못쓰고, 문건이 유출된 뒤 적절한 사후대처를 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별로 비난받을 일이 없다.

야당에서는 '특검을 하면 검찰수사 내용이 뒤집할 것'이라고 하지만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에서 보았듯이 사사건건 헤집고 트집 잡고 왜곡하며 (정부를) 헐뜯는 세력(!)이 존재하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정윤회 국정농단'을 증명할 결정적 한 방(?)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논란의 중심인물들이 나름대로 자기관리를 잘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와 당사자들은 더욱 억울해하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자꾸 대한항공과 청와대를 오버랩시킨다는 점이다.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30%대로 폭락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국민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대통령께서 누차 강조하고 있듯이, 올해 대한민국을 혁신하지 못하면 선진국 진입이 대단히 어려울 수 있다. 내주 초 예정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네 탓이오"가 아닌 "내 탓이오"를 이야기하며, 국민적 지지 속에 국정의 동력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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