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홀로 백혈병·지적장애 두 아들 돌보는 손종호 씨

조혈모 일치자 찾았지만 수술비 수천만원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손영민 군과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 손종호 씨. 영민이는 백혈병이 재발해 다시 한 번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손영민 군과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 손종호 씨. 영민이는 백혈병이 재발해 다시 한 번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때가 제일 마음 아프고 힘들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손종호(39) 씨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영민(6)이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영관(9)이에게 아빠이자 엄마다. 병원에서 영민이를 간호하던 엄마가 지난해 여름 홀연히 사라졌다. 종호 씨는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홀로 해내야만 했다. 평일이면 공장에서 일하며 영관이를 돌보고, 주말이면 병원에 있는 영민이 병간호로 하루도 쉬지 못하는 종호 씨. 최선을 다해 키우려고 하지만 한 번씩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게 된다.

"혼자서 두 아이를 돌보려니 챙겨주지 못하는 게 많나 봐요. 엄마가 없어 제대로 챙기지 못해주는 것도 미안하지만 혹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예요."

◆막내의 백혈병으로 무너진 가족

종호 씨도 한때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꿨다.

공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엄마와 결혼했고, 첫째 영관이가 태어나고 둘째 영민이까지 얻었을 때 종호 씨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영관이가 지적장애 3급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는 그저 착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면 된다며 크게 낙심하지 않았다.

"지적장애라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잘 자라기만 한다면 문제 될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영관이도 영민이도 아주 착해서 이대로만 커 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 초 영민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종호 씨 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저 독감이겠거니 생각했던 병이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가족은 흩어져 생활하게 됐다. 엄마와 영민이는 병원에서, 아빠와 형 영관이는 집에서 지냈다. 아빠는 지적장애가 있는 큰아들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고 만만치 않은 병원비로 집안 형편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다행히 약물치료만으로 영민이의 병세는 크게 호전됐고, 가족 모두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하지만 1년 만에 영민이의 몸에는 또다시 백혈병이 퍼졌다.

엄마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이맘때부터다. 영민이를 돌보다가 우울증상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부간의 다툼도 잦아졌다. 형 영관이로부터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기로 한 날을 한 달여 앞두고 엄마는 병원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저는 일하면서 바깥을 돌아다니고 했지만 아내는 병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라지기 전에는 자신만 힘들다면서 하소연을 많이 했어요.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도망가버린 엄마와 수술비 걱정인 아빠

엄마가 사라진 뒤 세 식구의 생활은 더 힘들어져만 갔다.

가장인 종호 씨는 일을 하면서 큰아들을 돌보고 작은아들의 병간호까지 해야 했다. 일을 하는 평일에는 병원에 갈 수 없어 간병인이 영민이를 간호하면서 비용 부담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앞두고 무균실에 들어가 수술을 준비하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힘들어하는 영민이 모습도 종호 씨에게는 크나큰 고통이었다.

"아이들 엄마가 없어지면서 몸도 경제적 상황도 나빠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어요. 그런데 영민이가 아파하는 모습에는 저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어요."

형으로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영민이의 병은 다시 한 번 호전됐다. 영민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엄마가 떠난 뒤 처음으로 집 안에는 웃음이 넘쳤다. 종호 씨는 영민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준비하며 퇴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식 한 달여가 지나서 받은 검사에서 영민이는 또 재발 판정을 받았다.

"동생이 돌아올 날 만을 기다리던 큰아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동생 장난감이라면서 뜯지도 않구요."

이번엔 종호 씨가 조혈모세포를 기증해 이식 수술을 할 차례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영민이와 조혈모세포 항원이 80% 일치하는 공여자가 나타난 것. 형인 영관이도 아빠인 종호 씨도 일치율은 50%였다.

"얼굴도 모르는 공여자가 그것도 80%나 일치하는 분이 나타나니 정말 기적 같았죠. 이번에는 영민이가 분명히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생겼구요."

동생이 집에 올 거라며 기뻐하는 영관이 앞에서 종호 씨는 슬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영민이를 치료하느라 바닥난 살림에 수천만원이 드는 이식 수술까지 앞두면서 생계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종호 씨가 일용직으로 일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남짓. 영민이의 간병비에 150만원을 모두 쓰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 생활비며 병원비를 대고 있는 형편에 조혈모세포 공여자가 나타난 기적 앞에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방긋방긋 웃는 영민이를 보면 그저 기쁘다가도 혼자 집으로 돌아갈 때는 수술비 걱정에 한숨이 끊이질 않아요. 애들 엄마라도 있었으면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원망도 해보구요. 그래도 영민이만 건강해진다면 세 식구가 힘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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