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활동적일 때인 김종훈(가명'27) 씨는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고시원 방에서 하루 24시간을 홀로 누워서 보낸다. 재작년 여름 지리산 등반길에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추락한 뒤 오른쪽 골반뼈가 조각조각 났기 때문이다. 작은 침대 하나와 책상만으로도 꽉 찰 정도인 좁은 고시원 방에서 예전처럼 건강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앞날을 상상해보지만, 당장 손쉬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이 망가진 몸에 턱없이 부족한 수술비 때문에 종훈 씨의 표정은 항상 어둡다.
"보육원에서 지내다 몇 해 전 겨우 하고 싶은 일도 찾고 제대로 살아볼 용기가 생겼는데 움직일 수 없는 다리를 보면 답답하기만 해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너무 힘들죠."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남매
종훈 씨가 2살쯤, 어머니가 집을 떠났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던 아버지와 종훈 씨의 2살 위 누나를 남겨둔 채였다. 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종훈 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쯤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망가졌고, 누나와 종훈 씨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처음엔 보육시설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냈어요. 그러다 돈을 벌어서 다시 돌아오겠다며 떠나셨는데 이후론 소식이 끊겼어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떠나자 종훈 씨에겐 누나밖에 없었다. 누나는 보육원에서도 똑똑하고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항상 동생을 먼저 챙기고 돌보며 도와주는 사람 없이도 학업에 충실했다. 두 사람 모두 착하고 바른 성격 덕에 엇나가는 일 한 번 없이 보육원에서 잘 자랐다.
종훈 씨의 누나는 "동생은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라 혹시 친구들에게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다행히 착한 성격 덕에 무리 없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고 말했다.
공부를 잘하던 누나는 대학에 진학해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종훈 씨도 평소 좋아했던 컴퓨터를 전공하게 되면서 보육원에서 나오게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게 되면 남매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친구에게 사기당한 이후 방황한 종훈 씨
종훈 씨의 인생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 건 친구들 때문이었다. 평소 사람 좋기로 소문난 종훈 씨의 성격을 이용해 돈을 빌려 갚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심지어 가장 친했던 친구는 종훈 씨 명의로 1천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대출받아 도망쳐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갚아도 갚아도 줄지 않는 빚 때문에 결국 학업까지 중단해야만 했다.
"친구가 제 명의로 사채를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돈보다도 친구를 잃었다는 배신감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불어나는 이자 탓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래저래 방황도 많이 했어요."
종훈 씨가 방황하는 동안 누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누나의 삶도 쉽지 않았다. 1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교사가 되는 길은 험난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차곡차곡 모은 돈이 바닥을 보이면서 누나는 학원강사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누나는 참 똑똑하고 착실했는데 형편상 오랫동안 임용고시를 준비할 수 없다 보니 학원에 취직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도움이 됐어야 했는데 안타깝죠."
◆으스러진 골반뼈와 함께 가라앉은 미래
종훈 씨는 재작년부터 인생을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중기계 기사라는 새로운 꿈을 꿨고, 법적 도움을 받아 사채도 더 이상 이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동결시켰다. 마음다짐을 새롭게 하자는 의미로 지리산 등반을 떠났다. 하지만 이 등반으로 인해 종훈 씨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날은 강풍이 불었다. 지리산 중턱에서 경치를 감상하던 종훈 씨는 강풍 때문에 7m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오전쯤 추락한 종훈 씨는 정신을 잃고 해 질 무렵이 돼서야 정신을 차렸다. 오른쪽 골반이 으스러져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머니에 휴대폰이 있었다. 119 구조대에 신고를 했고 거의 한밤중이 돼서야 병원으로 옮겨졌다.
2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조각조각 난 골반뼈를 모두 맞출 수 없었다. 병원에서도 일단 예후를 지켜보자는 말만 했다. 이겨내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목발을 짚고 재활에 집중했다.
"병간호를 해주고 수술비까지 감당한 누나를 위해서라도 빨리 일어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열심히 한 재활은 종훈 씨에게 오히려 독이 됐다. 제대로 붙지 않은 뼈가 녹아내렸고 인공뼈를 이식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인공뼈를 이식할 수도 없어 평생 걷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종훈 씨는 수술을 미뤘다. 이미 2번의 수술과 치료비 등으로 누나마저 빚을 지게 됐기 때문에 더 이상 누나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다.
"얼른 건강해져서 고생한 누나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너무 막막해요. 수술을 하게 돼도 또 누나만 고생인데 요즘은 하루종일 미안하다는 생각뿐이에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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