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경제 市長, 문화 市長

역대 대구시장들이 가장 고민한 것은 무엇일까? 시장 자신의 이미지였다. 시민들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정책적인 측면으로 보면 '경제 시장'과 '문화 시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경제와 문화, 둘 다 잘하면 금상첨화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문희갑 전 시장이 초대 민선시장으로 당선된 요인 중 하나는 오랜 경제관료 경험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경제 시장'을 표방한 문 전 시장은 위천국가산업단지 지정을 적극 추진했다. 위천단지가 무산되면서 서서히 시정 방향을 바꿨던 것 같다. 시민들은 '경제 시장'을 기대했지만, 정작 자신은 '문화 시장'으로 좌표를 수정했다. 2'28기념중앙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 등이 조성된 것은 그때다. 열정적인 문 전 시장은 현장을 수십 번 이상 방문해 고치고 또 고쳐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대구시립미술관,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등을 계획한 것도 그 당시다.

조해녕 전 시장과 김범일 전 시장도 기본적으로는 '경제 시장'보다는 '문화 시장'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조 전 시장이었고, 대회를 유치하고 개최한 것은 김 전 시장이었다. 경제 문제는 너무나 어려워서 지방정부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문화 이벤트는 단체장의 힘으로 얼마든지 기획할 수 있고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어쩌면 한국의 자치단체장은 '문화 단체장'의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놓여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말 권영진 시장은 이우환과 친구들 미술관 건립을 포기했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본다. 물론 추진 과정에 문제점이 많았고 넘어야 할 관문도 적잖았다. 문화계의 풍토나 일부 추진론자들의 약점과 이해관계를 익히 알고 있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큰돈이 들어가는 문화 인프라사업에 찬성하는 시민과 의회는 없다. 퐁피두센터,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게이츠헤드의 '북쪽의 천사' 같은 여러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의 출발이 모두 그러했고, 심지어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나 소규모 미술관이 세워질 때도 이런저런 반대가 있었다. 정치인, 시민단체는 격렬하게 반대하고, 신문은 연일 비판기사를 써댔다. '예산 낭비' '돈만 먹는 문화사업' '문화사업에 쓸 것이 아니라 빈민 구제나 경제에 투자하자' 등등…. 반대 논리는 어디서나 판박이였다. 이를 이겨내고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지휘자'의 안목과 신념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처럼 이 문제에 딱 들어맞는 말은 없다. 남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세계적인 것을 유치하려면 강한 신념과 유연한 사고가 있어야 한다. 권 시장은 그러지 못했다. 난관에 부딪히니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행정 매뉴얼에 따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하려면 문화사업은 포기하는 것이 옳다. 유니버시아드대회와 세계육상대회의 유치 과정에서도 공개하지 못할 '불투명한 절차'가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권 시장에게 '문화 시장' 이미지는 상당 부분 훼손됐다. 앞으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정도를 유치하면 모를까, 웬만한 문화 이벤트로는 어림없다는 느낌이다. 굳이 지나간 얘기를 끄집어낸 것은 권 시장이 자신의 좌표를 정확하게 설정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권 시장이 내세우는 '시민 행복'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반대진영을 설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그렇지만 권 시장이 시청에 머무르지 않고 곳곳에서 시민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