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내 심장을 쏴라

정유정 작가 동명 소설 영화화…병원에 갇혀 있는 환자들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함 들춰내

2009년 세계문학상을 받은 정유정의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친다"라는 머리글이 담긴 원작소설은 정유정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며, 22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여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후 정유정 작가는 '7년의 밤' '28' 등의 작품을 연달아 발표함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정신병원을 무대로 두 남자의 분투기를 그린 이야기는 전직 간호사였던 작가가 폭넓은 취재를 바탕으로 현장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살렸으며,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있는 문체와 함께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이렇게 훌륭한 소설에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충무로의 떠오르는 배우 여진구가 참여하니 영화는 청춘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한 스펙을 지닌 듯하다.

필자는 여기에다 신인감독 문제용에게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의 '쌍둥이들'(2007)이라는 단편을 눈여겨본 탓이었다.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단편영화 '쌍둥이들'은 두 연인의 꼬여버린 로맨스를 코믹하면서도 가슴 시리게 묘사해낸 수작이었다. 그로부터 7년, 멜로드라마의 정서와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는 젊은 감독의 등장이 못내 기다려졌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폐쇄적 인간인 수명(여진구)은 6년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해온 정신분열증 분야의 베테랑이다. 그는 퇴원 일주일 만에 "이번에 가면 죽기 전엔 못 나온다"는 아버지의 선고와 함께 수리희망병원에 재입원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날 입원한 스물다섯 동갑내기 승민(이민기)에게 휩쓸리게 되면서 파란만장한 나날을 겪는다. 망막세포변성증으로 비행을 금지당한 패러글라이딩 조종사 승민은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가족의 유산 싸움에 휘말려 납치된 신세였다. 눈이 완전히 멀기 전 마지막 비행을 하고 싶어 하는 승민은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있는 인물들 군상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온갖 소동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를 떠올리게 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역시 원작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며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명작이다. 잭 니콜슨이 분한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맥머피를 승민에 대입하고, 소설의 서술자이자 영화의 관찰자인 인디언 추장을 수명에게 대입하니, 두 영화는 꽤나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생각된다. 맥머피와 추장처럼 수명과 승민, 두 주인공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단 한순간을 살아도 자유롭게 날고 싶어 하는 승민은 병원의 골칫거리이다. 하지만 승민은 자신을 숨기며 안으로만 침잠하던 수명에게 삶에 대한 열망을 되살려준다. 거침없이 한껏 폭발하는 승민으로 인해 수명은 죽을 때까지 병원에 갇혀 있을 자신의 인생에 다시 희망을 걸고자 한다.

영화에서 정신병원은 우화적인 공간이다. 의사, 간호사, 병원 직원과 환자의 위계질서 위에 꽉 짜인 규율대로 움직이며 감시체계가 일상화된 공간인 정신병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은유한다. 영화는 병원 안에 갇혀 있는 환자들의 해프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꼬집고 개인의 자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꽤 괜찮은 기획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청춘들의 심장을 쏘지는 못할 것 같다.

두 사람이 왜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는지를 관객에게 이해시키지 못한 채 서사가 진행되다 보니 설득력이 떨어지고, 문어체 대사가 배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실소를 자아내곤 한다. 분투하는 현실의 청춘에게 미안하게도 영화 캐릭터들의 분투기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나열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인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산만하며 클라이맥스는 밋밋하다. 소설의 영화화에서 각색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한다. 그러나 잠재력이 충만한 감독과 배우이니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는 놓지 않으련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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