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대한 불만과 우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음식을 뱉었다고 해서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때리는 장면은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최근 일련의 사태들은 보육 환경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안겨주고 있다.
'보육'이 전 국민의 뜨거운 핫이슈로 부상한 요즘, 새삼스레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부모협동어린이집'이다. 부모협동어린이집은 '공동육아'의 형태로, 원장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과는 달리 부모들이 공동출자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현재 대구 지역에는 모두 6개의 부모협동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 올해 설립 20년차를 맞고 있으며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대구 수성구 시지동)을 찾았다.
◆영어 수학 인지 교육 없어
"벚꽃, 연 날리러 가자."
"보름달, 그림 그릴래?"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씩씩한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반말을 쓴다. 그리고 '선생님' 대신 아이들이 지은 별명으로 부른다. 선생님의 권위를 강조하지 않고 교사가 아이들과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은 1994년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을 찾던 사람들이 아예 어린이집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팔을 걷어붙이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고, 어느새 설립 20년을 맞았다.
공동육아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나들이'다. 흔히 어린이집에서 볼 수 있는 영어, 한글, 수학, 태권도 등의 인지 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나들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리의 힘을 키우고, 나들이에서 보고 들은 것들의 이름을 쓰며 글씨를 익힌다. 인지 교육이 전혀 없지만 아이들은 저절로 때가 되면 글을 읽고, 글씨를 쓴다. 여기에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부모들의 철학이 담겨 있다.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씩씩한 어린이집 아이들은 거의 매일같이 동네 인근으로 나들이를 떠난다. 어린이집 바로 옆의 천을산은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정상으로 오르는 두어 개의 길밖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이 개척해놓은 등산길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꿀통옆길' '폭포길' '산딸기 언덕' 등 아이들이 직접 예쁜 이름도 붙였다.
아이들은 산길에서 계절을 느끼고, 풀이 자라고 꽃이 피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험한다. 추운 겨울, 무더운 여름에도 예외는 없다.
◆쉽지만은 않은 공동육아
공동육아의 교육 내용은 교사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월 1회 방모임을 통해 교사와 부모들이 한 달 동안 살아온 아이들 이야기를 공유하고, 새로운 한 달의 계획을 나눈다. 가차없는 날 선 비판들이 오갈 때도 있지만, 이것 역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풍경이다.
먹을거리에도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의 철학이 녹아 있다. 먹을거리의 대부분은 생협에서 구입해 직접 조리한다. 현미밥, 각종 야채 등 다소 거칠지만 아이들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제철 음식이 대부분이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도 공동육아를 위해 대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김미재 씨는 "상업적인 어린이집이 아니라 상식적인 어린이집을 찾고 싶었다"며 "물론 어려운 점도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이곳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고 아이도 좋아한다"고 했다.
사실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들은 수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맡겨두고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여느 어린이집과는 다르다. 초기 출자금을 내고 조합에 들어와야 하는데다, 한 달에 참가해야 하는 회의만 해도 2, 3번이고, 일주일에 한 번 청소도 직접 해야 한다. 몇 년 전에는 "에어컨을 설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주제로 새벽 5시까지 마라톤 회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단지 에어컨 설치가 관건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와 교사의 근무환경, 아이들의 건강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었다.
치열한 난상토론이 이어지지만 부모들은 이곳을 선택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엄마이자 보육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교사로 활동 중인 이승희 씨는 "다른 어린이집에서도 일해봤는데, 그 속내를 알고는 아이를 보낼 수가 없었다"면서 "특히 엄마로서 교사로서 근무하다 보니,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일반 어린이집은 부모의 기대치를 항상 높여 놓기 때문에 아이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 키우기 위해 마을이 필요
어린이집은 아이를 맡기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이 동네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아이를 통해 만난 어른들은 서로 진정한 이웃이 된다. 최근에는 6가구가 공동주택을 지어 함께 거주하고 있다. 정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한 아이를 위해 한 마을 전체가 고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수잔 씨는 "마을 공동체가 무너진 이 시점에서 공동육아야말로 최선의 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품앗이로 육아하는 것이 이제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가지게 됐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이 2015년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것이다. '보육은 사회적인 활동'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한 결과다. 대구공동육아협동조합 이사장 김영수 씨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은 법인격을 획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사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져야 하는 공익적 사업의 영역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과도한 경쟁과 이윤추구의 보육 환경보다는, 공동체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과 벗해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싶다는 부모들의 소망이 공동육아를 하는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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