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서민층과 중산층

지난해 12월 29일 자 이 칼럼에서는 역설법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연말 정산 준비를 하다 보니 올해 소득 공제 원칙은 한마디로 '서민 증세는 안 하지만 세금은 더 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출산은 장려하지만 6세 이하, 출산'입양, 다자녀 추가 공제는 폐지하겠다'고도 한다." 새해가 돼 실제로 연말 정산을 해 보면서 직장인들은 증가한 세금 부담 때문에 분노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꾸겠다는 것 자체가 엄밀하게 말하면 증세이다.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꾸면 소득에는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과표 구간이 올라가 6% 내던 사람이 15% 내게 되고, 15% 내던 사람이 24%를 내게 된다. 몇만원 더 벌었다가 몇백만원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15% 세율을 적용받는 과표 기준 1천200만~4천600만원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일부 항목들은 12% 기준으로 세액 공제를 받으니 결과적으로 더 내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해서 서민 증세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한다.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 정부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동떨어져 있나를 살펴보니 '서민'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큰 차이가 있었다.

'서민'(庶民)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서민은 한마디로 '갑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며, '과표 기준 1천200만원 이하의 경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수학적으로 '중류 이하'라고 하면 중류도 포함되겠지만 일상적으로 '중류 이하'라고 하면 중류의 최하점부터 아래의 범위를 나타낸다) 서민을 그렇게 정의하면 정부의 정책은 담뱃값 올린 것을 빼고는 크게 증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이 사용하는 '서민'이라는 말은 특권층이나 부자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일반 국민' '대중', 그리고 6공화국에서 사용한 '보통 사람들'과 같은 말을 모두 '서민'과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서민은 전통적인 서민의 개념에 '중산층'을 합친 개념이다. 중산층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들, 먹고살 만은 하지만 돈 걱정을 항상 하는 사람들이다. 물건을 살 때 브랜드보다는 가격을 먼저 보고,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위해 놀이공원을 빌려서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저 미친놈. 저 돈이면……." 하고 분개하는 사람들이다.

사전을 보면 '중산층은 언제나 서민 세계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류 계층에 대한 환상적 동경 속에서 살아간다'(이청준, 중에서), '탱자나무는 대부분 서민 집들의 앞 울타리 노릇을 했고, 대나무는 뒤 울타리 노릇을 했다'(조정래, 중에서)와 같은 예문이 나온다. 이 예문들을 보면 중산층과 서민은 구분이 되는 개념이었다. 앞의 예문을 보면 중산층은 상류계급과 서민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계급이었다. 그러나 옛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못살다 보니 전 국민의 80%가 서민에 해당될 정도였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복지가 확대되면서 중산층의 비율은 사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자본주의가 마르크스의 예언처럼 망하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중산층의 존재 때문이다) 한자 '서'(庶)가 '보통, 평범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날의 '서민'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산층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서민 증세가 아니라고 하기보다는 중산층 증세를 하고 있음을 실토하고, 부자들에게 더 많이 세금을 걷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옳은 길일 듯싶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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