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한 유성건설(대구 소재) 회장이 400여 점이 넘는 미술 작품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했다. 화가가 아닌 컬렉터가 대규모 미술 작품을 기증한 경우가 거의 없는 지역 미술계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기증한 작품이 아카이브 형태로 대구미술관이 소장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로 구성돼 있어 기증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대구 미술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구미술관에 작품 기증 의사를 밝힌 뒤 올 1월 말 456점의 기증 목록과 함께 작품 일부를 미술관에 전달했다. 김 회장이 기증 의사를 밝힌 작품은 근현대 작가 110여 명의 구상 또는 추상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증 작품은 시대별로 작가의 작품 특성을 엿볼 수 있게 작가별로 많게는 10여 점, 적게는 3, 4점씩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기증 작품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우환 화백의 대표 연작인 '조응'(2004년 작'300호), '바람과 함께'(1990년 작'150호), 판화 등 3점이 포함되어 있다. 또 프랑스 작가 로베르 꽁바스의 회화와 파스칼 돔비스의 영상 작품 등 해외 작가의 작품과 함께 이응노, 이마동, 한묵, 최영림, 하인두, 윤명로, 우제길, 황창배, 서용선, 사석원 등 걸출한 국내 작가의 작품들도 들어 있다.
특히 김 회장의 기증 작품 중에는 우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구 출신 근대미술가 이인성 화백의 작품 '연못'(1933년 작'4호)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김선희 대구미술관 관장은 "이인성 화백의 '연못'은 물자가 부족했던 1930년대라는 상황을 감안할 때 천재화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이 화백 작품의 희소성을 감안하면 작품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강우문, 신석필, 이경희, 전선택, 감창락, 도팔량, 백낙종, 백태호, 변종하, 서석규 등 대구경북을 연고로 한 근현대 작가의 작품 220여 점(총 기증 작품 중 48%)이 기증 목록에 포함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지역 미술사에서 나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대구미술관이 수집하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번 기증을 통해 대구미술관은 지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게 됐다.
김 회장은 20년 넘게 1천여 점 이상의 미술 작품을 컬렉팅한 미술품 애호가로 예전부터 기증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회장은 300호 넘는 대작의 경우 기증 목적을 염두에 두고 컬렉팅을 했다는 것. 이번 기증에 수십여 점의 300호 대작이 포함된 이유다. 김 회장은 이번에 기증하고 남은 작품 600여 점도 기증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의 딸이자 우손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은아 대표는 "이번에 기증되는 작품은 투자 목적이 아니라 기증에 대한 생각을 갖고 수집한 것들이다. 나머지 작품도 기증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선희 관장은 "지역 근현대 작가의 작품 소장이 부족했던 대구미술관은 이번 기증을 계기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게 됐다. 기증 작품들은 오는 6월경 작품심의위원회를 통해 정식 기증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광주, 부산, 대전 등의 공공미술관에 대량의 작품을 기증해 왔던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하정웅 씨도 지역 근대미술 주요 작가인 곽인식의 판화 3점과 재일교포 화가 손아유의 회화 및 판화 43점 등 46점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했다.
이경달 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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