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참으로 강하고 모험심과 실험정신이 투철한 ○○병원 소아응급센터 레지던트를 고발한다'는 다소 긴 제목의 글이었다.
메일에는 응급실에서 아픈 아이를 안고 속을 태웠던 하룻밤 동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지인은 대구시내 한 의원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날 저녁 다섯 살 아이를 목욕시키려 옷을 벗기니 사타구니 윗부분이 불룩하게 솟아있었다고 했다.
사타구니 탈장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와 함께 밤늦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20분을 기다려 접수를 하고 다시 30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나타난 소아외과 의사는 아이의 탈장 부위를 꾹 눌러보더니 설명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시 40분 뒤에 나타난 의사는 탈장 부위를 다시 밀어 넣어야 한다며 수술실로 아이를 데려가 전신마취를 했다. 사타구니 탈장 수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빠져나온 탈장 부위를 밀어 넣을 때도 고통이 심하고 아이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전신마취가 필요하다.
탈장 시술을 마쳤다며 X-선 촬영을 하고 오라는 얘기에 부모는 마취가 깨지 않은 아이를 안고 가 사진을 찍었다. 마취가 풀리면 퇴원해도 된다는 설명도 들었단다.
그러나 30분 정도 후 다른 전공의가 왔고, 탈장 부위가 덜 들어갔다며 마취가 덜 풀린 아이의 탈장 부위를 다시 꾹꾹 눌렀다. 아이는 울면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척였다. 전공의는 탈장 부위를 제대로 집어넣으려면 다시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모는 망설였지만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설명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전신마취를 하고 탈장 시술을 한 뒤 다시 X-선 촬영을 했다. 그러나 또다시 수술복을 입은 전공의가 돌아와 탈장 부위를 더욱 강하게 눌렀다고 했다. 당연히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부모의 의견에도 전공의는 마취를 더욱 강하게 하자고 권했다.
세 번이나 전신마취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극구 거부하고 다른 의사가 봐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찾아온 외과 전문의는 탈장 부위가 잘 들어갔다고 진단했다. 부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10분 전까지 다시 마취를 하자더니, 탈장이 잘 들어갔다고 설명하면 어느 부모가 믿을 수 있을까.
화가 난 상태로 아이를 업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아이의 몸이 축 처졌다. 놀라 다시 응급실로 뛰어들어가니 그제야 채혈을 하고 인공호흡기 등 응급장비를 달아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는 게 부모의 얘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충분한 설명도 없이 몸무게가 20㎏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두 번이나 전신마취를 하고, 누구는 세 번이나 마취를 하자고 말하고, 다른 의사는 시술이 끝났다고 하면 의료진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인은 며칠이 지나서도 화를 삭이지 못했다.
살면서 아프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면 응급실을 찾는다. 이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이들은 예민하기 마련이다. 먼저 치료해주지 않는다며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녹화를 한다. 응급실에서 폭력을 당했을 때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다. 그만큼 잦은 폭력과 고성, 욕설에 노출되는 게 응급실의 현실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몸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보다 다친 환자들의 마음을 대하는 것이 더 어렵고 괴롭다고들 한다. 하지만 "환자들이 의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기분 나빠하는 것은 편견이다. 오해를 부르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것을 두고 "당신이 나를 미워하니까 나도 당신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이라는 건 맞지 않다.
요즘 병원에서 친절은 기본이다. 그러나 기계적인 친절보다는 정확한 상황 설명과 안내가 환자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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