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동의 테러, 서구가 맘대로 재단한 대가?…『현대 중동의 탄생』

현대 중동의 탄생/데이비드 프롬킨 지음/이순호 옮김/갈라파고스 펴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최근 시리아와 이라크 등에서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포로로 잡은 요르단 공군 조종사를 화형에 처하는 만행을 저질러 공분을 사기도 했다. 중동의 비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수립이 선포되자마자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고, 1956년에는 2차 중동전쟁이 발생했다. 이후에도 테러와 납치, 암살, 무차별 학살, 국지전 등이 이어졌다. 분쟁의 성격 또한 다양했다. 팔레스타인 문제, 이슬람교 내 종파 문제, 쿠르드족 문제, 석유자원을 둘러싼 강대국의 개입 등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끝없는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중동,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는 이 비극의 기원은 어디인가? 이 시끄럽고 복잡하며 끔찍한 '현대 중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이 책 '현대 중동의 탄생'은 석유가 아직 정치문제로 부상하기 전이었던 1914년부터 1922년까지, 이른바 중동국가들의 형성기에 초점을 맞추고, 중동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끝없는 전쟁과 테러리즘 노정을 밟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오래전부터 영국은 자국 식민지인 인도와 이집트를 잇는 전략적 다리로써 중동을 필요로 했다. 러시아 또한 영국과 대략 100년 동안이나 '게임'을 벌이며 아시아 진출을 집요하게 모색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영국과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서고, 설상가상으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적과 아군이 뒤바뀌었다. 당연한 결과로 복잡한 셈법이 오갔고, 각종 묵시적 명시적 약속들이 쏟아졌다. 서방 강대국들 간의 이 복잡한 약속들은 전쟁이 끝난 뒤 여러 국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의 결정으로 형성된 국가들이다. 지은이는 "연합국이 종전 뒤에 빈 지도에 선을 그려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이라는 신생국들을 탄생시키고, 중동의 지리와 정치를 개편했다"며 그렇게 한 경위와 이유를 면밀하게 보여준다. 지은이는 종교와 인종, 부족, 역사적 배경, 현지인들의 바람을 무시한 채 연합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분할을 강행함으로써 오늘날 테러, 인질, 전쟁 등과 같은 비극이 잉태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지은이가 말하는 '중동'은 비단 이집트, 이스라엘, 이란, 터키, 아시아의 아랍 국가들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도 포함된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는 20세기 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다. 이들 모두 수백 년 동안 오스만제국의 속령이었다가 제국이 해체되면서 탄생했다. 이들 국가의 탄생에는 제국주의의 대표주자였고 중동에 가장 많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열강의 역할이 컸다.

이 책은 현재의 '중동국가'들이 탄생할 즈음의 영국 정치권 내의 알력, 외교관, 군지휘관, 관료들의 힘겨루기, 그들의 오만함과 무지, 개인들 간의 충돌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럽 각국과 그들의 상대국, 식민지 정부, 현지의 원주민 지도자들 간에 복잡하게 전개된 공개, 비공개 외교 비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는 우드로 윌슨, 하르툼의 키치너, 아라비아의 로렌스, 레닌, 스탈린 등 역사적 인물들이 주역으로 등장한다. 이들 모두 나름대로 비전을 갖고 세계를 개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었다. 이라크와 요르단은 1차 세계대전 뒤 영국 정치인들이 지도에 선을 그어 만든 작품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의 경계도 1922년 영국 관리가 그었다. 그런가 하면 시리아-레바논의 무슬림과 기독교 지역의 경계는 프랑스가, 아르메니아와 소비에트 아제르바이잔의 경계는 러시아가 그었다. 이 과정에서 중동에서 살아가야 할 중동 사람들의 이해와 바람, 정치문화, 종교와 부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지은이는 서구 제국들이 힘과 문화적 우월감에 도취되어, 중동인의 이해관계와 현실을 무시한 결과가 바로 현재의 비극을 낳았으며, 이는 서방이 자처한 딜레마라고 말한다. 984쪽, 4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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