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군주, 정치가, 민중을 향해서, 특히 역사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권장하지만 민중과 정부가 경험과 역사로부터 뭔가를 배운 적은 한 번도 없고, 역사에서 이끌어낸 교훈에 따라 행동한 적도 결코 없었다.(헤겔의 '역사철학강의' 중에서)
'역사'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존중하는 능력과 자세를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교육부가 밝히고 있습니다.(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2011-361호) 하지만 지금까지 학교 현장에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고 성찰하는 역사 수업 장면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정된 정답이 있는 수능시험에서 필수로 지정된 한국사는 반만년의 시간 속에서 나열된 수많은 사건과 인물, 개념화된 용어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정답이 있는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지식을 암기하는 역사 수업이 부끄러운 현재 모습입니다. 헤겔이 '역사철학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암기되는 역사에서는 앎을 넘어 성찰하는 인문학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주체로 살펴보는 역사 대신 '생태와 환경'을 주체로 성찰하는 역사를 논한 역사학자가 있습니다. '녹색 세계사'의 저자 클라이브 폰팅이 그 사람입니다. 그는 또 다른 저서 '진보와 야만'이라는 책에서 '제노사이드'(특정 집단 구성원에 대한 대량학살)를 20세기 세계사 중 야만성의 정점이라고 말했습니다.
20세기에 벌어진 제노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로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나치의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떠오르지 않는지요?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과 50만 명에 이르는 집시를 죽인 '홀로코스트' 전범으로 나치 독일의 유대인 이송에 대한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범으로 수배되었으나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살고 있었습니다. 1960년 이스라엘 비밀경찰인 모사드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1962년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재판 당시 그는 자신이 유대인을 박해한 것은 상부에서 지시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습니다.
당시 재판과정을 취재했던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일사회와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렌트는 미국 뉴요커지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제를 단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기사를 싣고, 이 기사에서 아이히만의 죄를 분석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는 절대적인 악의 존재보다 말하기, 생각하기, 타인의 입장에서 판단하기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다'고 했습니다. 아렌트가 고발한 아이히만의 죄는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일-유대인들을 게토에서 아우슈비츠 등의 학살지로 이송하는 일-들이 유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유대인의 처지에서 자신이 수행할 일들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전혀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독일 사회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계기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의무화하는 역사교육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송현여고에서도 아이히만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고, '성찰하는 인문학으로의 역사'를 배우는 인문학 캠프(2014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들과 함께 앎을 넘어 성찰하는 역사로서의 인문학을 실천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헤겔이 바랐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실천하는' 인문학으로의 역사는 여러 가지 조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실행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식은 지식으로만 남아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안병학 송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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