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묻고 내가 답한다. 아빠, 나 뭐가 되고 싶은지 알아? 너, 나로호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아니, 이제 바뀌었어. 그래? 나… 음… 난 말이야, 음… 게임중독자가 될 거야! 순간 나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몰라, 그래… 음… 그래…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고 얼버무렸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입에서 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부터였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가? 하지만 그 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기가 일쑤였다. 내가 과자라도 사줄 때면 아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가, 감기에 걸리면 의사가 되고 싶어하고,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인 로보카 폴리를 볼 때면 경찰관이나 소방관이 되고 싶어했다. 이런 아이가 자기가 되고 싶은 것에 대해 구체적이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나로호의 발사 장면을 본 후였다. 우주를 날아 모험을 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과학과 관련된 책도 자주 읽혀주곤 했었다. 하지만 그 꿈이 게임 하나에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또래의 아이들 한둘이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게임을 설치하고 가끔 같이 즐겨하는 모양인데, 거기에 아이가 푹 빠져버린 것이다.
이거, 이러다 안되겠다 싶어 저녁 내 고민하다 아이를 보고 즉흥적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너, 게임중독자가 되고 싶다고 했지? 나중에 훌륭한 게임중독자가 되려면 반찬도 골고루 먹고 밥도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알아? 그러자 아이는 그래? 하며 밥상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고 TV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면, 너, 훌륭한 게임중독자가 되려면 TV 많이 보면 안되는 거 알지? 그 이후로, 동생과 싸우거나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을 때에도 '너, 훌륭한 게임중독자가 되려면…'이라는 레퍼토리로 아이의 생각을 바로잡곤 했다. 그러자 아이는 며칠이 지난 후, 에휴… 아빠, 너무 힘들어서 난 게임중독자 안될래 라며 모처럼 바른 소리를 한다. 나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게임중독자 되는 건 포기다! 하고 못을 박아버렸다.
작은 에피소드지만 부모로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아이에게 좋은 꿈을 키워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훗날,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처럼, 아이의 꿈과 재능이 나의 기대와 바람을 배반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진정한 꿈을 찾았다면, 빌리의 아버지처럼, 삶의 주인공이 되어갈 그를 위해 나는 나의 무대에서 과감히 내려올 수 있을까? 꿈은 이식되거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자기의 꿈을 찾을 수 있기를, 빌리처럼 내 앞에서 자기의 춤을 출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성호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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