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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여러분, 안녕?!

▲이성호
▲이성호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진작에 알아 버린 터, 설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가족과 함께 여행으로 보낼 처지도 아니었던지라 더더군다나 이번 설은 나에게 환영받지 못한 명절이었다. 명절 증후군으로 시달리는 아내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하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들의 선물과 용돈을 챙겨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안들이 결재를 바라는 서류처럼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시기. 설을 견뎌야 하는 부담은 앞으로도 점점 가중될 것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내게 즐거운 이벤트가 하나 있는데, 일 년에 딱 두 번 있는 고등학교 동아리 멤버들의 모임이 그것이다. 설과 추석 전야에 대구 중앙로 근처 오래된 선술집에 모이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여 년이 넘어오고 있다. 청년이 되어가는 설익은 소년들이 문학을 핑계로 일탈을 꿈꾸던 시절, 그때의 열 명 남짓 인물들이 지금까지 연락을 하며 꾸준히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독특할 수도 있는데, 그만큼 그 시절이 우리들 삶에 던진 의미가 컸음을 암시하는 것일 테다. 1980년대 후반, 잠깐의 민주화 시기와 함께 꽃 핀 사춘기의 열정과 정신적 방황, 그리고 남모를 첫사랑의 순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그때를 회상하며 술잔을 드는 친구들의 얼굴은 지금도 여전히 붉은 청춘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다른 대학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여 군대며 직장생활, 결혼, 육아 같은 현실적인 삶의 패턴을 쫓아가다 서로 연락이 끊어져 버린 어느 순간, 불현듯, 아직 대구에 남아 생활을 하고 있는 몇몇의 멤버들이 모여 시작한 모임은 해가 갈수록 한 명씩, 한 명씩 정규멤버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올해는 누구 한번 찾아보자, 또 다음해에는 누구 한번 찾아보자며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드디어 몇 해 전, 의정부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마지막으로 예전의 동아리 동기명부를 새롭게 만들어 내었었다.

멤버들이 다 모이기까지를 영화로 만들자면,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회상 장면이 섞인 남자판 '써니' 정도가 될 듯한데, 이 스토리들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잊은 한담과 주정은 가히 명절다운 즐거운 활력이 되곤 했다. 그러면서 매년 같은 멤버들이 모여 같은 장소에서 같은 술을 마시는 지금의 이 모임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서로 잔을 돌릴 때, 문득 누군가 던진 사진 한번 찍자는 말에 만장일치 동일한 목소리로, 그러자, 그래! 하며 술자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붉고 환한 얼굴 가득한 그 사진을 지금 나의 사진 폴더에 다시 저장하며 이름을 새롭게 입력해 본다. 여러분, 안녕? 이라고. 나의 아름다운 과거와 더불어 당신들과 함께해서 행복할 나의 미래도 안녕! 이라고.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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