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에 모인 400여 儒林 "신도청시대 '선비 정신' 이끌자"

매일신문사·경북청년유도회 안동서 '경북유림단체신년교례회'

27일 안동대학교 국제교류관에서 열린
27일 안동대학교 국제교류관에서 열린 '2015 경상북도 유림단체 신년교례회'에서 유림 및 문중 대표와 기관 단체장 등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경북의 신도청시대를 맞은 을미년 새해, 한국 정신문화와 경북의 정체성을 지탱해 오고 있는 경북 유림들의 새해맞이는 남다를수밖에 없다. '유림'(儒林)은 유학, 유교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유림'은 퇴계 선생으로부터 한국적 성리학으로 자리매김한 유교적 삶을 통해 한국적 철학을 만들어 왔다. 신도청시대 새해를 맞은 경북 유림들의 삶과 말을 통해 경북 새 천년의 비전과 철학을 엿본다.

◆현대적 삶 속에서 전통의 맥 잇는 유림

경북지역에는 '불천위'(不遷位'나라에 공이 있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영구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를 모시는 종가'종택이 즐비하다. 전국에 불천위 279위가 모셔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 경북지역에만 절반이 넘는 152위가 있다. 안동에만도 47위 종가가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이는 조선 성리학을 만든 퇴계 선생이 기반을 두고 후학을 양성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 종가'종택들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종손과 종부들이 있다. 그들은 현대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속에서 전통의 아름다운 풍습을 지켜 실천하고 전하는 책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부분 종손'종부들이 도회지에서 직장 생활을 퇴직하고 낙향해 종가를 지켜가고 있다.

의성 김씨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의 15대 종손인 김종길(69)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원장도 삼보컴퓨터와 두루넷 사장 등을 역임하고 귀향한 뒤 종가를 지켜오고 있다.

이 때문에 종손 1세대들은 차종손들의 교육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불천위 문중 종손들의 모임인 '영종회'를 만들어 인성운동과 함께 차종손 교육에 나서고 있다. '식생활'과 '행동' 등 현대적 삶 속에서도 유가의 풍속을 지키려는 유림들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이런 노력과 고민 속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들어 종가의 맏형격인 퇴계 종가와 종손이 개혁적 움직임을 보이면서 종가들이 변하고 있다. 지난해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퇴계 종가는 불천위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기로 정해 유림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앞서 퇴계 종가는 2011년, '문중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종손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도록 했다. 퇴계 16세손인 이근필(83) 종손은 "죽으면 납골당에 가겠다"고 했다. 17세손인 이치억(39) 차종손도 "제사가 간소화되지 않으면 종가의 미래는 없다"는 말로 종가의 개혁을 밝히기도 했다.

◆학봉종가, 보름까지 새해맞이 전통

학봉종가의 새해맞이는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예법을 지키며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학봉종가의 차례상은 남자들이 모두 장만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음력 섣달 그믐이 되면 학봉종가 남자들이 직접 어물전 등을 찾아 차례 음식을 장만한다.

영종회장을 맡고 있는 김종길 종손은 "생선과 고기를 사고 장만하는 것을 모두 남자가 맡는다.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예법을 따르는 것이다. 돼지고기를 제외한 모든 고기를 날것으로 장만해 제(祭)를 올린다"고 했다.

그믐날 저녁이면 자손들이 모여 '묵세배'의 전통을 이어온다. 이때 세뱃돈을 전한다. 묵은해를 보내며 세배를 하는 것은 이 집안에서 400년을 넘게 지켜온 예법이다.

설날 아침, 학봉종가는 학봉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에 제를 지내며 성주신에게도 제를 올린다. 학봉 종손은 특별히 자신의 모친이 어린 시절 자신의 장수를 기원했던 바위를 찾아 절을 한다. 학봉 종손의 형제들도 바위와 나무 등을 찾아 절을 하는데 이 또한 예법을 지켜온 것이다.

모든 차례가 끝나면 문중의 어른'아이 모두 대청마루에 모여 '종부'(宗婦)에게 합동 세배를 올리는 '도배례'를 행한다. 이때는 종부보다 연장자가 있어도 예외 없이 큰 절로 경의를 표한다.

학봉종가의 새해맞이 제례는 남자가 주를 이루므로 부녀자끼리의 상견례는 정월 대보름 전후로 열리는 윷놀이로 대신한다.

◆설 단배식, 경북 웅비'미래 열 지혜 모아

27일 매일신문사와 경상북도청년유도회가 주최해 안동에서 열린 '경북유림단체신년교례회'는 경북 유림 400여 명이 모여 신도청시대를 맞은 경북의 새로운 웅비를 위한 정신적 연대감을 조성하고, 새로운 경북 시대의 미래를 열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됐다.

이날 여창환 매일신문사 사장은 "퇴계학의 본향인 경북에서 유림은 선비정신을 올곧게 실천하며 이 땅의 정신문화를 주도해 왔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후예인 경북의 유림"이라며 신도청시대 유림의 역할을 당부했고, 주낙영 경북도 행정부지사도 "경북도는 역사 속 혼과 정신을 바로 세우는 정체성 확립을 통해서 미래를 선도해 가고자 한다. 그 선두에 경북 유림이 서 주시길 기대한다"고 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경북의 유림은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튼튼한 토대로서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역할을 담당해 왔다"고 유림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재엽 경북청년유도회장은 "새로운 경북시대를 맞는 올해는 경북 유림들의 역할과 정신문화 부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오늘 신년교례회를 통해 유림들의 친목과 단결, 유교문화의 현대적 재활용을 위한 지혜를 모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안동 엄재진 기자 2000jin@msnet.co.kr 청송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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