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빛과 그늘, 공모제의 함정

세상에는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사각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또 그 '빛'이 아무리 찬란하다고 해서, 어두운 면까지 무조건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각급 기관장이나 인재 채용에 있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가장 각광(?) 받는 것이 바로 '공모제' 다. 마땅히 필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현재의 '공모제'는 늘상 불거지는 인사 관련 잡음을 억제할 '만능 장치' 쯤으로 여겨지는 데는 문제가 있다. 툭하면 불거지는 인사잡음을 둘러싼 공격을 피해낼 수 있는 근거로도 사용되는 탓이다. 자격 요건만 된다면 원하는 누구나 응모 가능하고,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쳐 최고점자를 임명하는 방식의 공모제는 외형적으로 '공정성'의 틀을 갖췄다. 분명 공모제의 '빛'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늘'은 존재한다.

현실과 제도의 괴리는 늘 발생하게 마련이다. 제도는 틀에 묶여 있지만, 현실은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와 돌발 변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공모제'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끼리의 짬짜미'에 대한 가림막쯤으로 역이용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통상 특정 자리에 대한 공모 공고 전형이 시작되면 심사위원들은 빨라야 하루 이틀 전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됐음을 통보받게 된다. 자신이 심사해야 할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이것은 혹시나 사전 정보가 노출됐을 경우 지원자의 연줄 대기와 부정 청탁 등이 발생할 수 있는 우려 때문임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심사위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제출된 서류와, 현장 면접에만 의존해 인물의 됨됨이를 파악해야 하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입담에 속았다", "서류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53일 만에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난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감독의 경우에도 서류에서 경력 등이 잘못 혹은 부풀려 기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논쟁의 소지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보완'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 현실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서울'수도권 인사들이 '전문가'라는 이유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할 숙제다. 높으신 분들의 '기류' 따위야 마땅히 피해야 할 외압이고 이런 점에서 외지 인물이 훨씬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역에서 무슨 문제를 안고 있고 발전 방향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심사위원이라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다.

현직 프리미엄도 상당하다. 각급 인사들의 교체 시기가 되면 심사위원단이 구성되지만, 이럴 경우 현직에 있는 사람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도 도사리고 있다. 이미 누가 심사위원인지, 그리고 구성 과정에서부터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자가 발탁되는 공모 사례가 잦아지면서 '무늬만 공모'라는 비판도 잦지만, 그렇다고 현직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응시 불가의 조건을 다는 것도 합당치 않으니 고민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공모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고, 인사청문회와 꼼꼼한 서류 검증 절차를 통해 '공모제'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제주도에서는 2006년부터 가장 먼저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오고 있고, 경기도와 대전시에서도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인천시는 시의회의 인사간담회를 통해 재검증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인사에 있어 가장 강조되는 것은 '투명성'과 '공정성'의 원칙이다. 이제 대구도 '공모제'를 통해 형식적인 '공정성'의 틀을 갖췄다면 이제는 내부적으로 진정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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