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출혈로 쓰러진 이영희 씨

눈만 뜬 채 생명 이어가 자식들 찾아와도 몰라봐

뇌출혈로 쓰러진 이영희 씨를 언니 성희 씨가 돌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뇌출혈로 쓰러진 이영희 씨를 언니 성희 씨가 돌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남편과 이혼한 뒤 생때같은 자식들까지 떼어놓고 홀로 지내던 이영희(가명'39) 씨.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들이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질 못한다. 지난해 말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의 의식은 몸속에 갇혀버렸다. 눈만 뜬 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코에 연결된 줄로 식사하며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그를 돌보는 언니 성희 씨는 안타까움과 답답함뿐이다. 누구보다 고생했고 열심히 살아왔던 동생이 누워있는 모습에 눈물짓는다. "어릴 때부터 고생만 하고 살았어요. 이혼하고서는 아이들 볼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상에 둘뿐이었던 자매

영희 씨와 8살 위 언니는 세상에 오직 둘뿐이었다. 일찍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은 영희 씨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언니가 중학생일 때 서로 갈라섰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언니는 어머니의 지인에게, 영희 씨는 친할머니에게 맡기면서 생이별을 해야 했다. "부모님이 항상 냉랭하다 보니 어린 동생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어요. 헤어지면서도 내가 동생을 곧 데리러 오겠다고 다짐했었죠."

자매가 다시 만난 건 영희 씨가 초등학교 6학년 나이 때쯤. 성인이 되고 스스로 돈을 벌게 된 뒤 동생을 찾기 위해 할머니댁에 가서 언니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어린 동생은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섬유공장에서 생산직 일을 하고 있었다. 그 길로 언니는 동생의 손을 잡고 할머니 댁을 뛰쳐나왔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제가 '아기'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 동생이었는데 어떻게 공장에서 일을 시킬 생각을 했는지…."

언니와 살게 된 영희 씨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다. 학교를 마치고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기면서 그에게도 행복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영희 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폭력적이었던 남편은 출산한 뒤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구타했고, 결국 영희 씨는 아이까지 둔 채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그는 언니에게도 연락을 끊은 채 사라져버렸다. "남편에게 맞은 얘기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하면서도 부끄러워했어요. 아마도 저에게 미안해서 연락도 않고 도망갔었던 것 같아요."

언니는 10여 년간 사라져버린 동생을 그리워하며 이곳저곳을 수소문했지만 영희 씨의 소식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동생

잃어버렸던 동생을 다시 만나게 된 건 3년 전쯤. 동생은 지친 모습으로 언니를 찾아왔다. 도망치듯 사라졌던 영희 씨는 친구가 살고 있던 다른 지방으로 가 정착했었다. 일자리도 구하고 자리를 잡아갈 때쯤 영희 씨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실패의 아픔을 딛고 영희 씨는 다시 한 번 결혼했다. 큰아들과 작은딸을 얻고 이번엔 정말 행복을 찾은 줄 알았지만 남편의 잦은 외도는 또 한 번의 결혼 실패로 이어졌다. 힘든 순간 영희 씨가 찾을 사람은 언니뿐이었다.

"10년 넘게 연락도 않은 사실에 화가 났지만 동생을 보는 순간 반가움이 훨씬 컸어요. 그래도 나를 찾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요."

영희 씨는 언니 가족 근처에 집을 구해 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번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직도 했다. 2년 동안 부품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악착같이 살았다. 특별히 돈을 쓰는 곳도 없었지만 영희 씨는 낡은 월세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번 돈은 아이들을 돌보는 시댁에 줬기 때문이다. "동생이 얼마를 줬다 정확하게 얘기는 안 했지만 아마 대부분 시댁에 줬을 거예요. 시댁에서 금전적 지원이 없으면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밤낮없이 일하던 영희 씨에게 몇 달 전 또 한 번 고비가 찾아왔다. 2년간 일했던 공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것. 공장에서 나온 뒤 아르바이트를 했던 식당에서 온종일 일하며 아이들을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지난해 말 늦은 시간까지 식당 일을 하던 그는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그날부터 언니는 동생이 누워서 눈만 끔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끼니도 코에 연결된 줄로 간신히 해결하고, 뇌에는 계속 물이 차서 척추에 관을 꽂아 빼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삶도 녹록지 않은 언니는 동생을 돌보느라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처지에 이르렀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술비와 병원비, 간병비는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언니는 새벽 3시까지 식당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동생을 걱정한다.

"얼마나 불쌍해요. 저렇게 고생만 했으니…. 그저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동생과 맥주 한잔하면서 얘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주)매일신문사 입니다. 이웃사랑 기부금 영수증 관련 문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구지부(053-756-9799)에서 받습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