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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라이온즈와 돌핀스

이승욱
이승욱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무조건 야구선수라고 답하던 시절이었다. 같은 반 사내아이들 대부분이 비슷했다. 당연히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모집은 경쟁이 치열했다. 회원의 상징인 모자와 점퍼는 그래서 늘 소수의 것이었고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동네라면 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인천으로 전학을 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부모님을 졸라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우선 경쟁자가 없었기에 생각보다 가입이 수월해서 놀랐지만 그토록 갖고 싶던 모자와 점퍼를 착용하고 학교에 갔을 때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반 안에 롯데나 OB, LG 같은 다양한 구단의 어린이 회원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모두가 다른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혼자만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이상한 점은 그곳이 돌핀스의 연고지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태평양 구단의 모자나 점퍼를 입은 친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과 야구를 해도 대부분 자이언츠나 베어스 모자를 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교에서는 돌핀스 이야기 자체를 듣기가 힘들었다.

당시 어렴풋이 짐작했던 그 이유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건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였다. 인천 연고의 첫 프로야구 구단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3년 한 번을 제외하고 계속 최하위를 면치 못했고 이후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로 이어지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일은 드물었다. 전통적인 강팀들과는 다른 방식의 팬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에서 슈퍼스타즈는 다들 너무도 '프로다운' 이 세계에서 전혀 '프로답지 못한' 실력으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그런데 이후 핀토스나 돌핀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이것이 과연 라이온즈나 자이언츠, 베어스만큼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였을까. 소설은 이들도 칠만큼 치고 잡을 만큼 잡았다고 표현한다. 다만 더 잘 치고 더 잘 잡는 팀들이 있었을 뿐이다.

'프로'는 이러한 결과를 우열로 판단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단순한 잣대다. 그러나 이 잣대에 더욱 민감한 것은 어른들보다도 아이들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한을 풀듯 무자비한 실력으로 야구 왕조를 건설하며 추앙받았던 현대 유니콘스가 어느 날 갑자기 연고지를 이전했으니, 그때 받은 상처는 아직도 주변 친구들의 가슴 속에 깊게 남아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는 주로 나의 기쁨과 연관되는 것이었지만 태평양 돌핀스를 중심으로 한 다른 야구 문화는 우열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아님을 생각하게 했다. 말하자면 잘해도 야구, 못해도 야구인 셈인데,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삶이라는 그라운드는 여전히 척박한 땅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월간 대구문화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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