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의 국내 개봉일이 확정됨과 동시에 대규모 프로모션 행사 개최 소식까지 들려 국내 팬들을 들뜨게 하고 있다. 지난해 제작진이 국내 로케이션을 시도했다는 사실만 떠올려 봐도 처음부터 한국 관객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할리우드가 한국 관객에게 정성을 쏟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3, 4년 전만 해도 아시아 프로모션의 요지로 홍콩이나 일본을 택하고 한국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아시아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서울을 꼽고 있다.
'어벤져스2' 4월 개봉 맞춰 대대적인 한국 프로모션 계획
앞서 '어벤져스2' 제작진은 지난해 3월부터 약 2주에 걸쳐 서울 시내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서울 마포대교와 상암동 DMC 메인도로, 청담대교와 강남네거리 등 차량과 유동인구가 밀집된 주요 도로를 전면 통제하고 대대적인 촬영을 진행해 화제가 됐다. 국내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시도해본 적 없는 대규모 촬영으로, 일각에서는 '할리우드 대작이라고 너무 밀어주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소위 사대주의 논란까지 부추기는 등 촬영 단계에서부터 갖가지 이슈를 쏟아냈던 영화다.
어쨌든 한국에서 로케이션을 강행한 건 그만큼 한국 관객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듯 '어벤져스2' 측은 오는 23일 국내 개봉일을 확정함과 동시에 아이언맨을 연기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헐크 역의 마크 러팔로 등 여러 출연진의 내한 소식을 알리며 팬심을 자극하고 나섰다. 행사 규모 역시 역대 최고가 될 거라는 게 영화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솔직히 그럴만하다. 이미 2012년 개봉된 '어벤져스' 전편은 국내 극장가에서 707만 명을 동원하며 빅 히트작이 됐으며, '어벤져스'의 또 다른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이언맨3'는 2013년 국내에서 무려 9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어벤져스' 시리즈에 대한 탄탄한 팬층을 형성시킨 상태에서 한국 촬영까지 이뤄졌으니 '어벤져스2' 역시 개봉만 하면 1천만 관객 돌파 기록 달성까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한국 관객을 쉽게 여길 순 없는 노릇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역시 '고객은 왕'이다.
돌이켜보면 할리우드 외화 한 편 가져와 극장에 걸려고 안간힘을 쓰던 시기가 있었다. 할리우드 배우 한 명 행사장에 모시기 위해 온갖 굴욕을 감수해야만 했던 때도 있었다.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이지만, 영화라는 콘텐츠와 그 시장을 전제로 했을 때 미국과 한국의 철저한 '갑을 관계'가 '아주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저히 영화산업적 측면에서만 하는 말이다.
한국시장만 공략해도 대박, 할리우드가 챙기는 한국
앞서 '아이언맨3'는 한국에서 약 720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전 세계적으로 따졌을 때 미국과 중국에 이어 '아이언맨3'에 세 번째로 큰 수익을 안겨준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국가 면적과 인구, 영화관 수 등을 놓고 봤을 때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둔다는 건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입장에서도 놀랄 만한 일이다.
'아이언맨3'의 대성공 이전 '어벤져스'가 700만 명을 모았을 때도 '국내 개봉된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 영화 사상 최고 스코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이슈가 됐다. 그해 10월 이 영화의 제작에 관여한 케빈 파이기 '마블 스튜디오' 대표도 직접 한국을 찾았다. 당시 케빈 파이기 대표는 "5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는 건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라며 "한국 국민이 그만큼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이며 할리우드가 한국을 산업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증거"라며 한국 관객의 호감을 얻을 만한 멘트를 수없이 날렸다.
그 외에도 디즈니 스튜디오('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의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를 디즈니가 흡수한 상태)는 '어벤져스'와 '아이언맨3'의 대박 흥행 이후 이례적으로 한국 기자단만 따로 미국으로 초청해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디즈니의 경우 홍보할 만한 이슈가 있을 때 각국의 기자단을 모아 국제 프레스 행사를 개최하는 게 관례. 어마어마한 액수의 행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특정 국가의 기자단만 따로 현지로 불러들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특히나 할리우드의 '아시아 챙기기'에서 항상 빠져 있던 한국이 이 몇 안 되는 케이스 안에 속했다는 건 고무적이다. 물론, 경제논리로 봤을 때 '돈 쓰는 이'에게 친절한 건 당연한 일이며, 혹은 또 한 번 사대주의를 지적하는 이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산업의 발전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먼 발치에서나 바라보던 강자와 말을 섞을 수 있는 위치까지는 올라왔으니까.
달라진 한국 관객 태도, "할리우드 스타? 당연히 와야지"
달라진 상황에 따라 할리우드를 바라보는 한국 관객의 태도도 바뀌었다. 가뭄에 콩 나듯 내한하는 할리우드 스타를 보며 '이게 꿈이냐'고 반문하던 그때의 관객들이 아니다. 오히려 할리우드가 아시아 프로모션 중 방문 국가로 한국을 빼놓기라도 하면 맹렬히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를 긴장하게 만든다.
최근에도 '킹스맨'의 주연배우 콜린 퍼스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에 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한국시장에서 5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데도 내한하지 않는 건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냐는 내용의 항의가 온라인상에서 이어졌다. 심지어 '킹스맨'을 더 이상 봐서는 안 된다는 과격한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근 2, 3년간 어지간한 톱스타들은 죄다 한국을 찾아 팬서비스를 하고 간 상황. 한국 관객의 눈높이가 올라가고 여유가 생길 법도 하다. 특히 2013년에는 한 달 남짓한 기간에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을 찾았다. 휴 잭맨과 워쇼스키 남매 감독, 톰 크루즈, 아널드 슈워제네거,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윌 스미스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스타와 감독들이다. 2014년에도 브래드 피트, 로건 레먼, 키아누 리브스 등이, 올해 초에도 러셀 크로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내한이 이어졌다.
브래드 피트의 경우 '월드 워Z'가 개봉되던 당시 관계자들의 만류를 뿌리치면서까지 쉴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억지로 쪼개 내한을 추진했다. 국내 배급사 관계자들마저 '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무리'라고 했지만 굳이 브래드 피트가 "한국은 꼭 가야 하는 나라"라며 일정을 강행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브래드 피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14시간의 빡빡한 스케줄을 마친 후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 현지 행사에 참여했다. 브래드 피트는 '퓨리'가 개봉될 때도 아시아 프로모션에서 꼭 방문해야 할 국가로 한국을 지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자들은 한국 극장의 기술력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드문 4D관을 다수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이며 극장 수 자체도 많아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더 멋지게 포장해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몇 개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된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그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커지고 있는 국내 영화산업이 할리우드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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