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일제 징용 유적지가 세계문화유산 되는 꼴 지켜보나

조선인 강제 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일명 군함도)와 나가사키 조선소 등 11곳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 가시화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 유적 협의회는 이미 2주 전에 전문가 사전 심사를 통해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 28곳이 세계 문화유산 등재 조건에 기술적으로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오는 6월 말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 통과가 유력해진 것이다.

일본이 신청한 28곳은 막부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일본이 급속한 중공업 발전을 이룬 현장과 시설물들이다. 이 중 11곳이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돼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리다 상당수가 숨진 곳이다. 나가사키 조선소는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4천700여 명이 군함을 만드는데 강제 동원됐다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이 중 1천800명 이상이 숨진 곳이다.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는 수백 명의 조선인이 해저 700~1,000m 탄광에서 하루 12시간씩 노동에 시달려 '지옥섬'이라 불렸을 정도다.

일본은 이 유적들이 동양 최초 산업근대화의 유물이라는 점만 부각시켰다. 그 바탕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한과 피가 맺혀 있다는 점은 쏙 뺐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전범국이자 가해자였던 일본의 어두운 군국주의 역사는 묻히는 대신 근대화 역사의 현장으로 부각된다. 군국주의 침탈의 역사 현장을 지우겠다는 '역사 세탁'의 의도가 분명하니 이 역시 과거사 왜곡에 틀림없다.

우리 외교부가 일본의 또 다른 과거사 왜곡 시도에 눈감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일본은 이미 2012년 이들 유산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선 2013년 9월 잠정 추천서를 제출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일본이 등재 방침을 밝힌 지 3년이 다 되도록 '유네스코가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라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허를 찔렸다. 반인도적 강제 징용의 역사를 간직한 일제 유적이 이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그야말로 '조용한 외교'가 아닌 '무능 외교'의 극치다. 외교부는 이제라도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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