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훈민정음 상주본

지난주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장자로 알려진 배모 씨의 집에 불이 나면서 훈민정음 상주본이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정치나 경제, 연예계에서 각종 사건들이 많이 터지면서 이 사건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게 처리가 되고 있는데, 이는 절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화재의 객관적 가치로 본다면 훈민정음 상주본의 소실은 숭례문이 방화로 전소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로 만든 글자에 대해 한문으로 해설한 책으로 세종 28년 9월 상한(上澣)에 완성된 책이다.(이를 그레고리력의 양력으로 적용을 하면 1446년 10월 9일이 된다. 오늘날 한글날의 기준은 바로 해례본의 완성을 기준으로 잡는다.) 책의 구성은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든 취지와 글자의 음가, 실제 사용법을 담은 편과(우리가 알고 있는 '나랏말씀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글은 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제자 원리, 운용법, 용례 등을 담은 편과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와 창제자,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밝힌 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편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까닭에 문살과 문고리를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간송 전형필 선생이 각고의 노력 끝에 1940년 안동에서 해례본을 발견하였으며, 일제의 탄압을 피해 보관하였다가 해방 후 공개하게 된 것이다. 해례본이 공개됨으로써 한글의 창제자와 한글의 제자 원리에 대한 여러 낭설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중세 세계 언어학의 집약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학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백성들을 위해 기획해서 만든 글자라는 점 때문에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바가 있다.

그런데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원래 세종대왕께서 글자를 만든 취지를 이야기한 어제(御製) 서문이 없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실록에 있는 부분을 참조하여 필사해 넣은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2008년 상주에서 현재의 국보보다 온전한 형태의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번에 집에 화재가 난 배 씨가 집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했지만, 이내 골동품 업자인 조모 씨는 배 씨가 절도한 것이라고 소송을 제기하였고, 광흥사에서는 이 책이 애초에 명부전의 복장물이었던 것인데 도굴당한 장물이라고 주장하였다. 긴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는 조 씨의 소유로 인정하였고, 조 씨는 죽기 전에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씨는 훈민정음 상주본의 반환을 거부하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와중에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고, 세계인들이 한국에만 있는 유일무이한 문화재로 인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훈민정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건을 연예인들의 사생활 문제나 정치인들의 늘 있는 정쟁보다 가벼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가벼운 문제로 보아왔기 때문에 처음 공개된 뒤 7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에게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훼손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훈민정음 상주본을 찾을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하고, 언론에서도 이 사건의 처리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계속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 정부도 앉아서 문화재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엄정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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