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약장수' 배우 김인권

"소시민·약자로서의 제 삶 영화에 녹여냈어요"

영화 '약장수'는 배우 김인권(37)에게 빚졌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하얀 분칠을 하고 광대로 분장한 일범(김인권)이 웃고 있는데 슬퍼 보인다. 눈물이 나는 슬픔까지는 아니지만 복잡한 마음이 생겨 버린다. 김인권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제대로, 절묘하게 이용했다. 영화에는 그의 실제 삶의 경험도 많이 녹아 있다.

23일 개봉 예정인 영화 '약장수'는 할머니들에게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 '떴다방'에 취직해 '가짜 아들'을 연기하는 소시민 가장 일범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 아픈 아이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신용불량자인 일범은 번번이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퇴짜를 맞는다. 돌고 돌아 '떴다방'에 합류하는 캐릭터다.

김인권 본인의 경험은 비슷하게 녹아들었다. 과거 13년을 살았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 반지하 방, 신혼 생활의 기억도 있는 곳이다. 김인권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야 했다. 김밥 배달과 중학생 영'수 과외(그는 수능 상위 0.8% 등급에, 전교 회장 출신이다), 고등학교 연극반에 도움도 주는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26세에 결혼해 가장이 된 그는 가족을 위해 애썼다. 단칸방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힘겹게 사는 일범과 비슷하다.

김인권은 "소시민과 사회적 약자 역할이 계속 들어오는데 내가 살아오는 모습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번에 그 모습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약장수' 속에는 그간 코믹 감초의 모습이 없어 웃음은 없지만,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군으로 생각할 거리를 전한다.

또한, 연출 데뷔하는 조치언 감독은 '떴다방'에 대해서는 취재를 해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라 딸을 가진 아버지의 심정은 잘 몰랐다. 세 아이의 아빠인 김인권은 많은 부분을 설명해줬다. 특히 아이가 아파 병원으로 가는 신에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거의 실신해요. 아내 미란 역의 장소연 배우가 엄마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고 해서 아내의 경험을 알려줬죠. 제 아이도 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는데 조마조마했어요. 그때 촬영장에 있었을 때인데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죠. 아빠로서 살면서 여러 기억을 일범 연기에 녹아들게 한 것 같아요."

웃음을 주기 위해 분칠을 하고 춤을 추는 등 '떴다방'에서 엄마들의 '가짜 아들'이 된 것도 비슷한 점이 있다.

"전 전역하고 나서 영화 '해운대'를 만나 코믹 감초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전에는 세 보이고 강한 역할이었는데 그런 모습은 다 포기해야 했죠. 찌질한 모습을 보여야 했고, 그걸 관객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존심을 내려놓고 연기해야 했어요.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관객들이 좋아하시니 즐거웠죠."

이제는 김인권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듯하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제는 웃기지 마라"는 주위의 조언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정말로 웃기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과장되게, 또 비현실적으로 웃기는 건 자제하라는 거다. 현실에 있을 법한 상황에서 웃음을 유발하라는 주문이다.

"제가 소비될까 걱정이긴 했지만, 저는 제가 맡은 캐릭터가 현실과 맞닿아 있으면 지루함을 안 느끼실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현실성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이번에도 현실에 일범 같은 아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약장수'는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자식 된 도리로, 혹은 부모 된 의무감 등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김인권에게도 그랬을 것 같다.

"저도 마음이 무겁죠. 아버지가 저희와 안 살고 부산에 계세요. 와이프 보고 전화 한 번 드려보라고 해요. 사실 전 여전히 아버지와 서먹하거든요. 저는 한마디 하면 끝인데 와이프와는 더 많이 얘기하시더라고요.(웃음) '약장수'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영화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기쁘네요."

최근 들어 김인권에게는 저예산 영화 작품이 많이 들어오는 듯한 인상이다. 지난해 '신이 보낸 사람'에 이어 '약장수'까지. 도와달라는 러브콜이 귀찮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김인권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고마운 걸요.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참여하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감이 생기고, 투자도 더 받게 되면 좋은 거죠. 제가 뭐라고…. 영화 시장에는 상업영화도 있지만 한쪽에서는 사회성과 여운도 있는, 영화 본연의 힘을 가진 작은 영화에 참여하는 것도 배우로서 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공교롭게도 과거 주인공으로 나섰던 '전국노래자랑'이 개봉했을 때는 '아이언맨3'과 1주일 간격으로 붙었는데, 이번에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같은 날 개봉해 경쟁을 펼친다.

김인권은 "'어벤져스'와 비교되고 경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며 "틈새시장이 있지 않나. 관객들이 보고 싶다고 하면 안 틀어줄 수는 없지 않을까?"라고 짐작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약장수'는 팝콘 먹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홍보는 못하겠지만, 삶에 도움이 되는 메시지와 여운이 있어요. 잘 빚어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범의 삶이 제게는 세월이 지나서도 기억에 남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아요. 또 제가 했던 어떤 영화보다도 관객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자부해요. "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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