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실에서-청소년] 아들이 글을 읽고 나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데…

#"제 아들 녀석이 글을 읽고 나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떡해야 합니까"

■고민=아들 녀석이 중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맞이하는 학교 상담이라 아버지인 제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아들의 얘기를 듣고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들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글을 잘 읽어 내는데 어떻게 해서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의아해하셨습니다. 하루는 과제 공책을 검사한 적이 있는데, 알아보기 힘든 글씨와 철자법으로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학습 수행 속도가 느려 염려된다고 하셨다. 아이를 세심하게 더 관찰하겠으니, 부모도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못하여 걱정은 되었지만, 늦게 깨는 아이들이 있다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무심히 넘겨 버린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해법="우리 애는 글은 잘 읽는데 책을 읽고 나서도 뭘 읽었는지 잘 몰라요." "우리 애는 계산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응용문제를 잘 못 풀어서 속상해요."

아이를 둔 부모라면 가끔 이런 말을 하거나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머리가 늦게 트이는 것이 집안 내력이라고 변명하거나, 아이 아빠도 그랬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합니다. 늦게 공부 머리가 깬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가기도 한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인 경우 뇌의 손상이나 심각한 장애가 없고, 지능도 평균이나 평균 이상이기 때문에 특정 학습에만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부모나 교사가 확인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례 학생인 경우는 담임선생님의 주의 깊은 관찰로 읽기와 쓰기 학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례처럼 특정한 영역에만 정보를 처리하고 배우는데 어려움이 있는 경우를 '학습장애'라고 합니다. 즉 다양한 인지능력 중에서 어떤 한정된 영역에서만 발달이 느리거나 결손이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사례 학생처럼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글 읽는 능력만 뒤처진다든지, 기억력이나 공간능력 등은 정상적으로 발달했으나 계산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잘 알려진 위인 중에도 학습장애를 가졌지만, 자신들의 재능을 살려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인 아인슈타인, 읽기 장애를 가진 발명왕 에디슨, 언어기억력이 떨어졌던 세계적 대부호 록펠러도 학습장애였습니다.

학습장애는 학생들의 삶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자존감 저하, 대인관계 위축, 비행과 사회적응의 실패 등 2차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조기에 발견해서 집중적인 훈련이나 교정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한 영역에만 능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을 통한 전문적 치료가 이루어진다면 상당한 수준까지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가 많습니다.

사례 학생인 경우는 글자는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눈치 채지 못하여 발견이 늦어진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학습장애 중에서 독해장애는 잘 발견되지 않지만 사실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증상으로 사례처럼 쓰기 장애를 동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 학습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시간만 보내거나, 위 사례의 부모처럼 '나이가 들면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또한 학원이나 개인 과외, 학습지를 통해서 학습에 도움을 주려 합니다. 이도 저도 안되면 직접 부모가 붙잡고 앉아서 가르쳐서 해결해 보고자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질려서 더 공부를 안 하려고 합니다. 오히려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부모에게 불만만 쌓이게 되어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전문기관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무엇보다 은연중에 아이가 보내는 행동신호에 대한 부모나 교사의 유심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학습장애 아이를 둔 부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가르치려도 해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이러한 부모의 모습은 아이를 더욱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례 학생의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은 분으로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하는 분이신데, 이런 노력이 아들에게 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부모 상담을 통해 학습장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자녀가 가진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녀에 대한 이해는 점차적으로 부모가 느끼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정서적 지지를 할 수 있는 힘을 생기게 합니다.

대부분 학습장애 아이들은 학업 상황뿐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실패해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녀가 잘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례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잘하는 것을 찾는 과제는 아들이 모든 영역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들이 흥미를 보이는 과학 분야에 대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얘기 나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가 탐구심이 강한 에디슨의 장점을 찾아 키워주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아이의 장점을 발견함으로써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에 변화가 시작되어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사례 학생은 보고 말하는 것은 읽기에 비해 어려움이 덜한 편이라 교육방송에서 나온 과학 관련 내용들을 부모와 함께 시청한 후, 방송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도록 함으로써 실패의 경험을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정보를 배우는 계기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현숙(경북대 아동가족학과 상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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