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붙잡힌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기업의 운영 형태를 그대로 가져왔다. 중국 본사와 한국 자회사 간에 소관 업무를 나누고, 각 조직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해 실체를 숨겼다.
중국에는 지역별 영업본부를 만들어 회원 관리와 실적 경쟁을 시켰고, 회원 및 프로그램 개발자 모집, 현금 인출 등의 업무는 한국에 세운 자회사를 활용했다. 내막도 모르고 취업한 청년들은 중국에 머물며 불법 도박에 가담했다.
◆중국 호텔 2개 층 통째 빌려 도박 사이트 관리
이들은 도박 사이트의 영업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 시스템을 도입했다. 중국 상하이(上海)와 옌타이(烟台) 등에 지역 본부를 만들고 본부끼리 경쟁을 붙여 성과급을 지급했다.
실적이 떨어지면 강하게 질책을 했고, 이 때문에 각 지역본부에서는 컴퓨터로 경기 진행과 도박 진행 상황 등을 지켜보면서 고액의 당첨금이 예상되는 회원에게는 "배당금이 너무 많다"거나 "돌려줄 돈이 없다" "사이트를 폐쇄하겠다"고 협박해 당첨금을 주지 않거나 액수를 깎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또 각 지역본부 간에 누가 일하는지 알 수 없도록 점조직 형태로 운영해 실체를 숨겼다. 근무 인력이 본사와 지역본부를 더해 70~80명에 이르지만 서로 누가 관련됐는지 잘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과 한국에 소프트웨어 자회사를 설립한 점도 특징이다. 중국에 있는 자회사는 도박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고 서버를 관리했다. 호텔의 2개 층을 통째로 빌려 업무를 하고, 수십여 개의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면 도박 사이트의 도메인을 바꿔 추적을 피하거나 사이트를 폐쇄했다.
◆해외 IT기업 속여 대졸자 뽑아 중국 보내버려
한국에 세운 자회사는 회원 모집과 프로그램 개발자 모집, 현금 인출책 등의 관리를 맡았다. 우선 해킹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무작위로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회원 가입을 유도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 개발팀의 인력 수급도 한국 자회사가 담당했다.
국내 유명 취업 포털 사이트에 해외 유망 IT기업으로 소개하며 구인광고를 한 뒤 면접을 거쳐 직원을 선발해 중국으로 보냈다.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학 졸업자 중 상당수가 내막을 모르고 취업해 범죄자로 전락했다.
검거된 18명 가운데 취업 준비생을 포함해 13명이 이런 방식으로 입사했다. 직원들은 3개월간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뒤 정식 사원이 되면 월 200만~300만원가량의 급여를 받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멋모르고 입사했던 직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탓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실업자 신세가 돼야 하고 이미 연루됐다는 걸 안 직원들은 조직을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자회사는 현금 인출책의 관리와 송금, 수익의 국외 반출을 위한 환치기 등의 업무도 담당했다. 덜미를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대포통장을 이용했고, 자신들의 도메인을 수시로 변경하면서 다른 도박 사이트에 디도스(DDoS) 공격을 해 폐쇄시키는 등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사업을 벌였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압수한 회사 조직도를 통해 드러난 70여 명과 국내 모집책 등 공범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라며 "서너 명이 모여 운영하던 영세 도박 사이트와 달리 철저하게 기업형으로 조직을 운영했다는 점이 가장 눈여겨볼 점"이라고 말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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