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여름 안동공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까까머리 남학생은 취업을 앞두고 실습을 위해 고향 청송군청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고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들었던 이 남학생은 식견을 넓히러 갔던 안동 유학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실습 귀향길은 이 학생의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40년이 지난 지금 이 학생은 청송군청 안전재난건설과장(4급)이 됐다. 이호문(59) 서기관이 바로 그다.
이호문 과장은 "집에 내려와 집안일도 돕고 단순히 집에서 다니기 편할 것 같아서 현장실습을 군청으로 선택했다. 공무원이 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7만~8만원, 일반회사가 20만원이었다. 중동 건설경기가 좋아 외국 나가는 친구들은 30만원까지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장은 실습 기간 동안 가족같이 대해준 공무원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공무원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그에게 한 간부가 사무실에서 일을 시키기보다는 현장을 더 보여주며 새로운 경험까지 시켜줬다고 한다. 그는 친동생처럼 잘 대해준 그 간부를 보며 '나도 공무원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이 과장은 "그 간부가 한참 동안 청송을 떠나 있었는데 2007년 다시 청송에서 만나게 됐다. 바로 한동수 청송군수님이다. 당시 한 군수님은 최연소 20대 토목계장으로 장래가 촉망됐다. 직급이 높아도 늘 나에게 큰형처럼 잘 대해줬다. 공무원이 되기까지 많은 동기 부여가 된 분"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근정포장까지 받을 정도로 일을 잘하는 그는 청송에서 '제설왕'(除雪王)으로 더 유명하다.
이 과장은 "공무원을 시작하고 초창기에는 겨울철 도로의 눈 치우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쌓인 눈을 치우다 보니 중간에 얼어붙거나 빠르게 제설이 되지 않아 민원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당시 군 건설과 도로계장이었던 이 과장은 군 직원들을 설득했다. 눈이 내린다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제설작업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과장의 의견에 불만을 늘어놓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 과장의 말대로 작업한 결과 모든 도로 구간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청송은 눈이 내리기 전에 제설작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제설 하나는 어느 지방자치단체보다 빠르고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 과장은 최근 인생 이모작을 위해 다양한 일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더 공부하기 위해 교량과 터널 등 건축물에 대한 안전성 관련 논문과 서적 등을 뒤지고 있다. 임업인들에게 자문하며 자기 밭에 소나무까지 심어 가꾸고 있다. 또한 이 과장은 부인 권은희(59) 씨와 아들 부부, 딸과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처음으로 외국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이 과장은 "40년 공무원 생활을 끝낸다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년이 정년퇴임이지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1년 일찍 나가게 됐다. 평생 공무원을 하면서 후회하지 않았고 항상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송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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