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큰헤드호를 기억하자'는 표현은 '신사의 나라'를 자처해 온 영국인들의 오랜 자긍심을 대변한다. 이 말의 기원은 1852년 600여 명의 군인과 가족을 태운 수송함 '버큰헤드호'의 침몰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이 함정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근해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때, 군 장병들은 어린이와 여자를 태운 구명보트를 향해 경례하며 배와 운명을 함께한 것이다.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버큰헤드 정신'은 1912년 4월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때도 발휘되었다. 초호화 유람선이 빙산과 충돌해 기울어 갈 때, 선장은 최후의 순간까지 승객의 탈출을 지휘하다가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에도 선장의 명예와 책임에 인생과 목숨을 건 감동적인 사례가 있다.
1985년 참치 조업을 마치고 회항하던 원양어선의 선장은 남중국해에서 SOS를 접했다. 사흘을 굶은 채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96명의 베트남 보트피플이었다. 20척이 넘는 배가 지나가면서도 모두 외면했지만 선장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난민은 관여치 마라'는 회사의 지침에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구출했다.
식량이 떨어진 상태에서 부산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다른 선박회사에서도 취직을 거부당한 채 고향인 통영에서 멍게 양식업을 해왔다. 선장으로 살아온 경력과 보장된 미래까지 모두 잃었지만, 많은 생명을 구한 그는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0년 제주 마라도 남쪽 동중국 해상에서 조업을 하던 오징어잡이배가 풍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장은 21명의 선원에게 구명동의를 입혀 배에서 내리게 한 후 조난신호를 타진하다가 침몰하는 배와 함께 실종되고 말았다. 표류하던 선원들은 신호를 받고 찾아온 어선에 구조되었다.
중국 장강(長江)에서 침몰한 유람선 '둥팡즈싱(東方之星)호' 선장이 승객을 버려두고 먼저 탈출했다는 논란이 세월호의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서양인들이 침몰한 한국과 중국의 여객선 선장의 망동을 두고 또 뭐라고 입을 댈지 걱정이다. 인륜을 중시하는 오랜 유교적인 전통을 지닌 두 나라의 부실한 해운 관리와 선장의 몰염치한 행위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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