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콩트] 사과의 습격

이용성(대구 수성구 만촌동)

"으………음" 텔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머리에 뭔가를 맞고서는 의식을 잃었었다.?

깨고 보니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대체 뭘로 맞은 거야. 그리고 여긴 어디지?'

그러고 보니 낯선 곳이다. 주위엔 아무것도 없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이야.'

텔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일어서다 말고 이내 그만 '쿵'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누군가가 의식을 잃은 후에 묶었는지 손과 발이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닌가.

'나, 참 이건 또 누가 한 짓이야!'

텔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은 후 깨어보니 손과 발이 묶여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텔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맞은 머리만 더 아파져 올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체념하고 있는 순간, 저쪽에서 웅성거림이 들린다. 무리가 텔에게 오는 듯했다. '옳거니. 이제 오는구먼.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오기만 해봐라!' 텔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드디어 웅성거리던 무리가 가까이 왔을 때 텔은 조금 전의 분노는 잊은 채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텔에게 다가온 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럴 수가…. 그것은 바로 사과였다!!!!!!!

"윌리엄 텔, 이제 정신이 드나?"

우두머리인 듯한 검붉고 커다란 사과가 앞으로 나서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손과 발이 묶인 채 기절해 있었던 사람은 바로 윌리엄 텔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로,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명중시켰던 명궁 윌리엄 텔이었다.

"왜, 우리가 말을 하니 신기한가? 언제부턴가 인간들이 하도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고 우리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 보니 우리에게도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거야. 바로 말을 하는 DNA가 생긴 거지. 인간들처럼 말이야."

사과 무리 중에서 껍질이 쪼글쪼글한 나이가 지긋하게 보이는 사과가 한마디했다. 아직까지 텔은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사과들이 말을 하는 것도 어처구니없거니와 사과한테 자신이 당했다는 것도 부끄럽고, 왜 자신을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텔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럼,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묶어 놓은 거요?"

"그렇다."

뭐지, 이 상황은? 사과들이 나를 왜 잡아둔 거야?

"아니, 나를 왜 잡아온 거요? 내가 당신들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요?"

쏘아붙이듯이 텔이 음성을 높였다. 분하기도 하고 사과하고 얘기를 나누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왜 우리가 텔, 당신을 잡아왔는지 이유를 모르겠소?"

우두머리 격인 사과가 다시 쩌렁쩌렁 울리듯 말했다. 그 기세에 눌려 텔은 자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모르겠다니깐요. 도대체 왜 이러세요, 나한테." 분하다는 듯이 텔은 말했다.

"거 보세요. 저 인간은 그런 거 모른다니깐요." 길고 먹음직하게 생긴 붉은 사과가 모양과는 다르게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냥 땅에 파묻자고 했잖아요. 반성할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이번엔 우람한 체격의 울룩불룩한 사과가 금방이라도 덤빌 듯이 씩씩거렸다.

조금 전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사과가 나서며 무리를 진정시켰다.

"모두 조용히 해라. 잠시만 기다려."

웅성거리던 무리가 조용해지자 우두머리인 사과가 나서며 말했다.

"진짜 이유를 모르겠소, 텔?"

"진짜 모릅니다. 안다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이러고 있겠소. 그리고 우선 이 손발부터 좀 풀어주면 안 되겠소?"

진작부터 쥐가 나서 참기 어려웠던 텔은 사정하듯 말했다. 무리 중에서 작은 사과들이 우두머리 사과의 눈짓에 우르르 다가오더니 이내 풀어준다.

'으~~~윽' 하고 텔은 온몸을 비틀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지 손발이 제대로 펴지지도 않았다. 한참 후에야 텔은 몸이 편해짐을 느꼈다.

"고맙소이다. 그럼 얘기나 들어봅시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 잡혀 있는지 말이오."

"좋소. 그렇담 얘기해주지." 우두머리 사과가 텔의 바로 앞으로 다가오더니 풀썩 앉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당신은 성주의 모자에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지. 그러나 당신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선처를 구했지. 이에 성주는 당신의 활 솜씨를 구경하고자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맞히면 풀어주겠다고 했고 말이야. 맞지?"

그렇다. 텔은 우두머리 사과의 얘기를 들으면서 옛날 생각이 났다.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맞소이다. 모두 다 사실이오. 그래서요?"

"당신은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정확하게 명중시켰지. 그러고는 아들과 함께 풀려났고 말이야."

텔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활을 쏘아서 사과를 명중시켰을 때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활이 사과를 정확하게 꿰뚫을 때의 쾌감도 다시 느껴졌다. 통쾌함도 느꼈었다. 그때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쩌렁쩌렁하는 소리가 다시 귓가를 울렸다.

"인간들은 이래서 안 돼.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식사 후에 개운함을 제공하고, 아침에는 상큼한 주스로 인간들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줬는데 말이야. 뻑뻑한 마요네즈에 숨이 막힐 듯 범벅이 되어도 우린 군소리 한마디 안 하고 인간들의 먹는 즐거움을 위해 희생했는데 말이야…." 그가 흐느끼듯이 말을 흐렸다.

"그런데, 당신은 그 무시무시한 활로 우리에게 공포를 주었지. 그때 죽은 동료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 아프다고!" 그의 말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와 눈물을 닦아내는 사과들이 보였다.

"인간들의 내기만 아니었어도 우리 동료가 죽진 않았을 거야. 활이 당겨질 때의 그 공포와 자신의 몸통을 꿰뚫을 때의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디며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거야. 그는 우리를 대표해서 죽은 거라고!"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흥분하는 사과들이 보였다.

텔은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당시를 생각하며 미안함이 들었다.

"미안하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했소이다. 내 깊이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용서해 주시오."

텔은 진심으로 모든 사과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깊이 뉘우쳤다. 인간의 건강과 먹는 즐거움을 주던 과일, 탐스러운 사과를 인간들은 단지 눈요기로 여기고 내기 게임의 하찮은 물건으로 쓰고서는 쓰레기로 버렸던 것이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나도 인간들을 계몽하겠소이다. 부디 용서해 주시오."

윌리엄 텔은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

껍질이 쪼글쪼글한 사과가 나서며 연륜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이해해 주고 말해 주니 고맙소이다. 당신이 약속한 대로 인간들의 음식에 대한 계몽에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심을 항상 가져 줬으면 하오."

그의 목소리에도 진심 어린 충고와 고마움이 배어 있었다. 텔은 대답 대신 허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갑자기 저쪽에서 텔을 죽일 듯이 말했던 울룩불룩하면서 엄청 큰 사과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번엔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다. 이 여자는 우리에게 독극물을 주입했던 독한 여자다. 어서 잡아와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음식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은 용서하면 안 돼. 잡으러 가자!!!!!"

그의 외침에 사과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텔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묶여 있던 이 자리에서 이번엔 왕비가 어떤 모습으로 깰지 상상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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