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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은 '세계 헌혈자의 날'…대구경북의 헌혈 영웅들

대구경북 최다 헌혈자 차모 씨가 대구 서구 중리동 자택에서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과 헌혈유공장 금장을 들어 보이며 뿌듯해하고 있다.
대구경북 최다 헌혈자 차모 씨가 대구 서구 중리동 자택에서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과 헌혈유공장 금장을 들어 보이며 뿌듯해하고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 삼덕지구대 소속 금동직 경위가 헌혈증서를 들고 있다. 금 경위는 자타공인 대구경찰 헌혈왕이다.
대구 중부경찰서 삼덕지구대 소속 금동직 경위가 헌혈증서를 들고 있다. 금 경위는 자타공인 대구경찰 헌혈왕이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 4월 14일은 블랙데이… 6월 14일은? 달콤한 키스데이? 오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이날은 바로 '세계 헌혈자의 날'이다.

'세계 헌혈자의 날'은 헌혈의 중요성을 알림과 동시에 헌혈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하고자 제정된 기념일로써, 지난 2004년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사연맹,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가 혈액형을 발견한 미국의 면역학자이자 병리학자인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의 출생일인 6월 14일로 지정했다.

매년 전국적으로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열리고 거리에서 헌혈을 독려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5%대에 불과한 헌혈률을 보인다. 이는 OECD 국가 중 헌혈률이 가장 낮은 순위이며, 그런 탓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상당량의 혈액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주 매일신문은 '세계 헌혈자의 날'을 앞두고 헌혈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영웅(英雄), 영어로는 hero(히어로). 사전적 의미는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성웅'(거룩하리만큼 뛰어난 영웅)이라 부른다.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의 제목도 '영웅'이다. 이처럼 엄청난 업적이 아니더라도,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영웅이라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을 만한 이들이 있다. 이들이 한 일은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사람을 살리는 데 썼다. 이들은 바로 '헌혈 영웅'이다.

◆헌혈 477회, 대구경북 최다 헌혈왕…"69세 연령제한 아쉬워요"

지난 3월 2일 오후 2시 30분쯤 대구 중구 헌혈의 집 중앙로센터에 한 69세 남성이 들어왔다. 중앙로센터에 있는 모든 간호사들이 남성을 반갑게 맞이했다. 남성도 반갑게 인사하며 익숙한 듯 순번대기표를 뽑고, 전자문진, 문진실 상담 등의 절차를 거쳤다. 문진을 마친 그는 혈장성분헌혈을 할 수 있는 침상에 누웠다. 그는 팔뚝에 굵은 바늘이 꽂힐 때 왠지 모를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괜스레 간호사에게 "예쁜 간호사들 계속 보고 싶은데 이제 못 봐"라며 농을 건넸다.

이날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은퇴경기였다. 1945년 3월 5일생. 가장 늦은 나이까지 헌혈할 수 있는 혈장성분헌혈도 법에 따라 만 69세까지만 할 수 있다. 3일 후면 만 70세가 되는 그는 앞으로 더는 헌혈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날로 그는 평생 477회 헌혈을 했다. 이 사람은 차모(70'대구 서구 중리동) 씨로 대구경북 최다 헌혈 기록을 갖고 있다.

차 씨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좋아해 헌혈을 많이 했다고 내세우지도 않았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 보건복지부 장관상 등을 받았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대구경북 최고 언론인 매일신문에서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하니 '아! 내가 진짜 많이 하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헌혈왕의 시작은 뜻밖에 소박했다. 약 20년 전 어느 날 차 씨는 한일극장 앞을 지나다 아무 생각 없이 헌혈버스에 올랐다. 헌혈왕의 첫 헌혈치고 거창한 동기도 없었다. 그런데 이날 옆에서 헌혈하고 있던 30대 남성이 자신은 이번이 13회째라며 자랑스러워했던 게 차 씨에게 자극제가 됐다.

차 씨는 "당시 태어나서 처음 헌혈하는 내가 보기에 젊은 사람이 헌혈을 13회 했다는 게 천문학적인 횟수로 보였다.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잡으려 계속 헌혈을 하게 됐다"며 "수첩에 일정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는데 헌혈하는 날을 표시해두고 기대감을 갖고 지내다가 그날이 되면 꼭 헌혈하러 갔다"고 말했다.

차 씨는 헌혈에 대한 자기 철학이 있다. 바로 진심이다. 그래서 그는 헌혈 은퇴를 하면서 '앞으로 10년은 더 할 수 있는데'라는 섭섭한 마음이 있지만, 주변과 가족에게 헌혈을 권하지 않는다. 헌혈 캠페인에 나서지도 않는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안 하는 거잖아요. 굳이 권할 필요 있나요. 주삿바늘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즐거이 봉사하고 그로 인해 행복함을 느낀다면 헌혈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지 않겠어요?"

◆생명 살리는 경찰관 금동직 경위

흔히 경찰관은 치안을 유지하고 소방관이 생명을 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경찰관이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 삼덕지구대 금동직(46) 경위가 주인공이다. 금 경위는 지난달 31일까지 239회 헌혈했다. 금 경위는 김영길 대구경북혈액원장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금 경위가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 중 가장 헌혈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헌혈에 열심이다.

그는 경찰관이 되고 첫 야간근무를 하던 날 있었던 사건 때문에 헌혈에 빠져들었다. 금 경위는 1993년 경북 울릉군으로 처음 발령받았다. 첫 야간근무를 하던 날 뱃사람들끼리 싸움이 났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 현장에 가보니 선장이 칼에 찔려 상의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다급한지라 당시 금 순경은 선장을 급히 보건소로 옮겼다. 밤늦게 불려나온 공중보건의와 보건소 직원들이 수술 준비를 했지만 수혈할 피가 없었다. 마침 금 순경의 혈액형이 선장과 같은 Rh(+) A형이었다. 금 순경은 환자 옆에 누워 피를 뽑았다.

금 경위는 "당시 피가 부족해 같은 혈액형을 가진 의경들까지 밤에 불려 나와 긴급 수혈을 했다. 눈앞에서 내 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본 후로 헌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금 경위는 근무가 없는 날에 헌혈을 하러 갈 때면 가족과 함께 가려고 노력한다. 교육 목적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나란히 침상에 누워 헌혈한 경험은 정말 소중하다. 여덟살 난 딸도 "이 다음에 커서 아빠처럼 헌혈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이런 예쁜 자녀들 때문에 헌혈하러 가는 장소도 바뀌었다. 혼자 다닐 때는 대구경북혈액원으로 갔지만, 요즘은 가족과 함께 교통이 편리한 대구 도심 헌혈의 집으로 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걸로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고귀한 일이겠어요? 가진 게 없어도 내 피 한 방울로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나누는 일이 기뻐 나이가 허락하는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글 사진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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