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확진자 K씨 다닌 곳 '비명'…"한나절 판 국밥 달랑 8그릇"

채소가게 "평소 10%도 못 팔아"…슈퍼마켓 사장 "동네가 죽었다"

18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의 한 주택 앞에서 메르스 영향으로 자가 격리된 의심환자의 부인이 쌀과 라면, 통조림 등을 내려놓고 가는 공무원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18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의 한 주택 앞에서 메르스 영향으로 자가 격리된 의심환자의 부인이 쌀과 라면, 통조림 등을 내려놓고 가는 공무원들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18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대명동 한 경로당. 지난 3일 대구 첫 메르스 확진자 K(52) 씨가 15분가량 머문 곳이다. 이 때문에 담벼락과 출입문에는 '경고문, 메르스 관계로 본 경로당을 무기한 폐쇄한다'는 안내글이 붙어 있었다. 무더위 쉼터 역할을 하던 이곳이 문을 닫자 노인 2, 3명은 놀이터 그늘 아래에서 마스크를 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경로당 주변 골목길은 마치 주민들이 피난을 떠난 것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K씨가 병원에 격리되기 전까지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K씨가 잠시라도 머물렀거나 지나간 곳은 인적이 끊겼다.

K씨가 한동안 머물렀다는 대명3동 한 노래방 인근. 주변 상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근심으로 가득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모(45'여) 씨는 "요 며칠간 고객이 평소보다 70% 줄었고 단골손님조차 예약을 미룬다. 주변 음식점들도 서둘러 문을 닫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보석집을 운영하는 송모(56) 씨는 "우리 가게는 멀리서 보석을 주문하는 손님이 대부분인데 모두 다음에 찾아가겠다고 해서 완성품들이 쌓여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K씨가 들렀다는 국밥집 또한 철저한 소독을 거친 뒤 문을 열었는데도 70석 규모의 식당에는 사장과 종업원 두 명뿐이다. 사장 김모(57) 씨는 "오늘은 지금까지 국밥 8그릇밖에 못 팔았다. 식기구와 홀, 화장실 소독을 철저히 했는데도 K씨의 동선이 뜨고 난 뒤부터는 찾아오는 손님이 없다"며 "식당을 개업한 지 2개월밖에 안 됐는데 정말 큰일이다"며 울상을 지었다.

근처 대명시장에는 마스크를 낀 상인들만 덩그러니 보일 뿐이다. 가게 몇몇은 아예 문을 닫은 상태다. 채소가게 상인 우모(64) 씨는 문을 닫은 가게를 가리키면서 "이 가게들은 메르스 여파가 좀 잠잠해질 때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 씨는 "이들 가게처럼 문을 닫으면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마지못해 영업하고 있는데 오늘은 평소 10분의 1도 못 팔았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보통 상인들이 오후 10시가 되면 문 닫고 들어가는데 이틀 전부터는 오후 8시만 되면 다 문 닫고 들어간다"며 "현재 주변 아파트에서는 '대명시장에 가지 마라'는 방송까지 한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대명3동주민센터 주변은 확진 환자가 나온 후 갈수록 적막감만 더해가고 있다. 16일까지만 해도 영업을 하던 세탁소와 미용실, 목욕탕 등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문을 연 몇몇 식당에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한 슈퍼마켓 사장은 "동네가 다 죽었다. 슈퍼까지 닫으면 정말로 죽은 곳이 될까 봐 문을 열긴 했는데 물건 하나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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