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라 함은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제사 성격의 의식 행사이다. 작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단연 메르스 감염으로 인한 국가적 혼란과 근래 보기 드문 가뭄 현상이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메르스의 퇴치법은 아이러니하게 장마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격적인 여름철 날씨는 30℃를 웃돌고 습도가 70% 이상인데 여기다 장마까지 겹치면 메르스 바이러스의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피가 지질막으로 구성된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습도에 노출되면 쉽게 파괴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메르스 바이러스의 생존율은 뚝 떨어지게 되므로 환자의 몸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배출되어도 감염률이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들로 유추해볼 때 어쩌면 메르스 바이러스의 천적은 바로 장마를 동반한 여름철 날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비가 다량으로 많이 내려서 고온다습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지독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면 우리 조상들은 어김없이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에 관한 기록들은 삼국유사에서부터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삼국시대에는 각각 나라의 시조를 모신 사당인 시조묘 또는 명산대천 등에서 기우제를 올렸고, 고려시대에도 국왕 이하 문무백관들이 근신하며 부처'용신'종묘에 법회와 제를 올렸다고 '고려사절요' 등에 언급하고 있다. 조선시대 왕들이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의 기우제는 잦은 편이었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기우제가 음력 4월에서 7월 사이의 연중행사였다.
최근에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의 금강연에서 스님들과 평창군수 등 지역민들이 함께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과거 무신년(1927), 경상도에 가뭄이 혹심했을 때 영덕군에서는 군수 주재 아래 군내 116부락이 일제히 밤 10시에 기우제를 올렸다. 군내의 산봉우리마다 장작과 청솔가지를 집 더미만큼 쌓아 놓고 일제히 불을 붙인 것이다. 이후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별이 총총하던 밤하늘에 구름이 엉키더니 빗줄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은 불기둥으로 하여금 천신을 달래는 주술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조상 대대로 전수되어온 과학적 근거의 인공강우법이기도 했다. 기압변화가 적은 야반에 수많은 곳에서 불을 지르면, 냉각된 밤의 대기군 주변에 가열된 대기층이 형성되고 기압 차이를 발생시킨다. 이 고저 양 기압이 충돌하여 구름이 생기고, 생솔가지의 타고난 재가 빗방울을 결집시키는 미립자 구실을 하여 비를 맺게 된다. 물론 강수량에 상관없이 목 타는 농작물과 민심만은 이 같은 인공강우법 기우제로 그 목을 축일 수가 있었다.
이처럼 경상북도의 기우제는 지역마다 특색을 지닌 채 행하여졌는데, 청도는 곳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기록만 남아있을 뿐 그 흔적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청도천 지류인 각북천 최상단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비슬산 용천사 용천샘의 암반수만이 지금껏 천년이 넘도록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솟아오르고 있다. 그래서 선묘 낭자의 용신이 산다는 용천정의 용왕제만이 기우제 형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고대 한반도와 일본 및 중국의 기우제는 그 형태가 비슷했다. 서양에서도 그리스로마신화의 주신인 제우스의 신목 떡갈나무에 물을 뿌리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그 주술을 교회에서 물려받아 성직자들이 기우제 의식을 집행하였다. 이토록 가뭄은 유사 이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우제라는 의식을 수반하게 되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가뭄은 메르스라는 질병 창궐과 함께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온 국민이 정성을 다해 마음속 기우제를 염원해야 할 때이다. "산천대천신명이시여, 이 땅에 단비를 내리시어 대지를 적시고 메르스를 물리치게 하소서, 그리하면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이 평안하여지고 국운은 번창하리니…."
지거 스님/청도 용천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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