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청와대가 거부하자 국회의장이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수정안을 내놓았다. 주변에서 '요구'와 '요청'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를 문의해 와서 법안의 문구를 확인하려고 뉴스들을 찾아보니 찾기가 힘들었다. 법안의 본래 말과 개정안에 대한 취지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기사들은 정치인들이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들이었다.
기사 검색을 포기하고 법제처에서 확인한 원래 국회법 98조 2항은 이렇다.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총리령 및 부령(이하 이 조에서 "대통령령 등"이라 한다)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여 당해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처음의 개정안은 '그 내용을 통보' 부분을 '수정'변경을 요구'로 바꿨다. 이전에는 국회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통령령에 대해서 '이런 점에서 상위 법률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해서 행정부로 '통보'하면 행정부가 그 의견을 수렴하여 (국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수정'변경을 요구'한다는 것은 국회에서 '이 부분은 이렇게 고쳐 주십시오.'라고 의사를 밝히면, 정부에서는 수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에 따른 합당한 답변을 갖추어 국회를 설득해야 하고, 합당한 이유 없이 밀어붙였을 때 정치적 부담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보'보다 훨씬 강력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국회의장이 찾은 묘수가 바로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요구'와 '요청'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요구(要求)03 「명사」
「1」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함. 또는 그 청.
¶ 요구 사항/요구 조건/요구에 응하다
「2」 『법률』어떤 행위를 할 것을 청함.
¶ 증인 출두 요구.
요청(要請) 「명사」
「1」 필요한 어떤 일이나 행동을 청함. 또는 그런 청.
¶ 협력 요청/지원 요청/항해 중인 선박에서 구조 요청이 왔다.
여기서 보면 요구와 요청의 결정적 차이는 요구에 있는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에 있다. 그래서 요구한다는 것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기 위해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요청한다는 것은 자신한테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다. 위의 예문에서 두 말을 바꾸어 썼을 때, 예를 들면 '요청 조건', '구조 요구'와 같은 말이 성립되지 않는 이유나 '출두 요청'보다 '출두 요구'가 강제적 느낌이 더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국회의장이 포착하고 행정부의 체면을 최대한 살려줄 수 있는 중재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적 해석 자체만 놓고 보면 국회에서 '요구'를 하거나 '요청'을 하거나 행정부가 반드시 들어줄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신 행정부에서 만든 법률이 옳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이 있을 뿐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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