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醫窓] 사춘기(思春期)·사추기(思秋期)

몇 달 전 50대 초반 여성 환자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 때문에 외래 진료를 받으러 왔다. 환자는 "평소 활달한 성격으로 매사에 적극적인 편인데 최근에는 왠지 외롭고 쓸쓸하며 혼자 있고 싶고 잔소리만 많아지면서 삶의 의욕이 없다"고 호소했다.

또 평소 규칙적인 생리도 불규칙해지고 최근 몇 달간은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갱년기 증상이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검사를 한 후 몇 달간 호르몬 요법과 적절한 운동을 꾸준히 하도록 처방했다. 현재 환자는 증상이 많이 호전돼 예전 성격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에 의욕적으로 임하고 있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인생에서 두 번의 중요한 신체적 변화를 겪는다. 초경이 시작되면서 신체적 변화를 겪는 사춘기와 생리가 없어지면서 겪는 폐경기이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져 조만간 10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7~10년 정도 더 오래 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년을 넘기면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덜 건강해 보이고 아픈 곳도 많다.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은 갱년기를 지나면서 몸에 많은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갱년기를 정점이라는 뜻의 '클라이맥터리엄'(climacterium)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전환기인 셈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갱년기는 여성이 가임기로부터 비가임기로 이행되는, 즉 생식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일시적인 기간을 뜻한다. 폐경은 월경이 완전히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남성도 50대에 불안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 심리적인 변화가 종종 나타난다. 이를 두고 '남성 폐경기' 또는 '남성 갱년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여성과 같은 급격한 호르몬의 결핍이 없기 때문에 그 증상도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게 있어서 이 시기가 꼭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 시기를 두고 '사추기'(思秋期) 또는 '행년기'(幸年期)라고 부른다. 아직 사전에는 정식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지만 최근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말이다. 왜 요즘 들어 이런 말이 생긴 것일까?

예전 사람들은 사추기를 누릴 여유가 없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자녀 양육으로 일생을 보냈다. 자신의 삶이 없었다. 그러나 현대 여성들은 이 시기를 출산과 육아에서 벗어나 진정한 본인의 삶을 즐기는 시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거나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상태인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이제는 중년여성들에게 있어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슬기롭게 극복할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고석봉/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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