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왕에게 내려지는 최고의 불명예는 군(君) 칭호를 받는 일이다. 왕위를 양위하지 않고 강제로 폐위되기 때문에 왕위에 있던 시절 모든 명예와 부를 박탈당한다.
능호(陵號)가 깎아내려지고 묘의 규모, 장식, 의전은 대폭 줄어든다. 재위 기간 기록한 사초도 실록 대신 일기(日記)로 격하된다.
조선 27대 왕 중 딱 두 사람만 군 칭호를 받았다. 바로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지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앓았던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모든 비극이 잉태되었다. 폐비 윤씨 사사(賜死)에 관련된 성종의 후궁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였고 정적들을 박살(撲殺) 내거나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야사에 의하면 할머니 인수대비를 들이받아 그 후유증으로 숨지게 했고 국법인 삼년상도 못 치르게 막아버렸다.
궁중의 유흥 장면이 민간에 노출될 것을 두려워해 궁궐 주변 가옥을 철거했고 자신의 사냥터를 조성한다는 핑계로 민가를 부수고 사람들을 내쫓았다.
갑자사화 이후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한 연산군은 본격적인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해 기생, 양민 처녀, 유부녀, 대감집 규수에 이르기까지 1만여 명을 불러들여 궁중에서 음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여기에 임사홍, 임숭재라는 부자 간신이 왕의 복심이 되어 국정을 농단했다. "왕을 다스릴 힘이 내 손안에 있으니 내가 바로 왕 위의 왕이다"며 온갖 계략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들의 무도한 정치는 중종반정으로 실각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슷하게 왕좌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광해군의 폐위 과정은 조금 다르다. 광해군의 비극적 결말은 개인의 인격 파탄보다는 당시 조정의 두 세력인 서인과 북인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희생물로 보는 시각도 많다.
혁신 조세의 첫 장을 열었던 '대동법'을 실시했고 출판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같은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특히 외교, 국방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보여 명과 후금(後金) 사이에서 절묘한 중립노선을 펼친 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탁월했던 외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반정과 쿠데타를 지나치게 의식해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임해군, 영창대군까지 잔인하게 제거하는 바람에 패륜군주의 굴레를 쓰고 정적들에 의해 인조반정을 맞게 되었다.
두 군주는 숱한 악행과 패륜으로 반정의 희생자가 되었고 유배지에서 쓸쓸한 말로를 보냈다.
영화 '간신'이 얼마 전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개봉 초 동성애 장면과 지나치게 높은 노출 수위로 구설에도 올랐지만 잘 극복하고 장기 흥행의 발판을 마련한 듯하다.
지도자가 아첨과 영색(令色)에 휘둘리고 주변 권력을 다스리지 못하면 나라와 조정을 어떻게 파탄시키는지 알게 해주는 교훈이다. 실패한 역사에서도 교훈을 찾는다면 영화 '간신'이 좋은 교재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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