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현장기록 119] 징크스는 언제 깨질까?

'그 일'이 있은지 벌써 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하반기 신규자 임용 및 정기 인사이동으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인사이동이 있는 계절은 항상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다. 그런 분위기와 함께 전일 야간 근무 후 다시 야간 근무가 이어지는 날은 수면에 대한 생체리듬이 깨져서인지 쉰다고 쉬지만 개운하지가 않았다.

전입해 온 선'후배를 챙기려고 조금 이른 두 번째 야간 근무 출근을 하니 신규자와 전입자의 출동 임무 부여와 개인 장비 등의 정리 때문에 사무실이 분주했다. 이상하리만큼 인사이동에 따른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화재 출동이 잦았다. 마음의 각오를 다시 다지고 출동 장비 확인을 다른 날보다 더 꼼꼼히 했다. 완벽하게 출동 태세를 갖추고 동료들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며 출동이 없기를 바랐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화재 출동 지령은 심야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10시쯤에 날아왔다. 출동 지령이 떨어진 곳은 우리 센터 관할은 아니지만 우리가 선착대로 도착할 위치의 아파트였다. "화재현장인 아파트 10층에 탈출하지 못한 요구조자가 몇 명 있다"는 지령이 날아들었다. 다른 출동보다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화재 출동은 항상 부담스럽다. 아파트 출입구인 두꺼운 방화문을 파괴하고 빠른 시간 내에 요구조자를 무사히 구조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또한 위층으로 유독가스를 포함한 연기가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질식에 대한 위험도 대비해야 한다.

그날의 출동 방송은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차고를 출발해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보이는 아파트라 직원들이 장비를 완전히 착용하기도 전에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중 주차, 불법 주차 차량으로 인해 아파트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파트 창문으로 붉은 화염과 검은색 연기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화복을 착용한 동료들은 무거운 각종 화재 진압 장비를 들고 뛸 수밖에 없었다.

선배가 운전하는 펌프차는 아파트 주 출입구 쪽으로 진입했지만, 탱크차 기관사인 나는 발코니로 불길이 나오는 것을 목격했기에 아파트로 진입하지 않고 발코니가 있는 공터로 진입했다. 그곳에서 방수포를 사용하면 다른 층으로의 연소를 저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을 뿌릴 준비를 하니 발코니에서 살려달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살려달라는 그 목소리에 나의 마음은 더 급해졌지만, 출동인원이 없었다. 탱크차에는 경방대원 없이 혼자 탔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만 했다. 10층까지 방수포가 다다르게 하기 위해 방수펌프 RPM을 최대로 올려놓고 펌프차 상부에 올라가 전쟁영화에 나오는 기관총처럼 생긴 방수포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발코니까지 소화용수가 도달하여 물을 계속 뿌릴 수 있었고, 얼마쯤 지나자 화염과 연기가 사그라드는 듯했다.

방수를 잠시 중단하고 상황을 파악하니 아주머니는 계속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고 다행히 불길은 잡힌 듯했다. 발코니로 진입한 구조대원과 경방대원들의 모습이 보였고 아주머니를 모시고 나가는 게 보였다. 그제야 나도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불행 중 다행으로 조그마한 화상도 입지 않았고 연기는 조금 흡입했지만 무사했다. 다른 층의 입주민들은 우리 동료들의 안내로 신속하게 대피하여 인명피해는 한 분도 없었다.

화재 진압 후 아주머니가 걱정되어 찾아봤는데 멍한 얼굴로 가족들에 둘러싸여 구급차에 앉아 계셨다. 딸인 듯 보이는 학생은 가족이 다치지 않은 게 어디냐며 엄마를 위로하는 듯했다. 그날의 화재로 그 가족은 재산피해가 많았을 것이다. 화재보험이라도 들어놓으셨는지 걱정이 되었다.

인사이동 시즌이 연말이다 보니 난방기구를 본격적으로 사용할 때라 그런지 유독 화재가 잦다. 그것과 더불어 인사이동을 하면 신규 임용된 신임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베테랑 소방관이라도 근무지가 바뀌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의 출동은 항상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희한한 것은 인사이동으로 가장 정신없을 그때, 기가 막히게 출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선배들이 신임자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그럴 것이라고 한다. 이런 징크스는 언제 깨질까.

송경환/대구수성소방서 만촌119안전센터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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