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태풍 소식을 접한다. 매년 30개에 이르는 태풍이 발생하지만, 한반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평균 3개쯤 된다고 한다. 어느 해에는 5, 6개의 태풍이 몰려와 강산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는가 하면, 어떤 해는 태풍의 영향이 거의 없었던 때도 있었다. 지난 1976년의 경우 6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강타했지만, 1989년과 2001년은 태풍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해였다.
강력한 태풍은 대부분 불청객이지만, 더러는 목마른 대지가 비를 잔뜩 품은 태풍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한다. 넘쳐도 안 될 일이지만 모자라도 낭패인 것이 태풍이다.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인 태풍은 이렇듯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인간사에 희비의 쌍곡선을 그어놓고 가기 마련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를 할퀴고 간 태풍 중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태풍은 '사라'로 84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6'25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전인 1959년 추석 명절에 쳐들어온 '사라'는 특히 경상도 사람들에게 생생한 악몽으로 남아있다. 2002년 초가을에 발생한 태풍 '루사'는 엄청난 호우를 동반하며 재산 피해가 5조원을 넘겼다. 영동지방에 일일 강수량 870㎜를 기록하며,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태풍으로 남았다.
이듬해 9월에 발생한 '매미' 또한 강한 비바람을 몰고 와 숱한 재앙을 남긴 태풍으로 기억된다. 이처럼 야속하게도 수확철인 9월에 찾아온 태풍이 더 위협적이었고 그만큼 피해도 컸다. 그 누구도 반기지 않았지만 제멋대로 찾아와 지독한 상처만 남기고 간 불청객의 사례들이다. 하지만 태풍은 자연생태나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이다.
태풍은 대자연을 정화하는 스크루 역할을 한다. 바닷물을 깊이 뒤집어 산소를 공급하고, 지상의 잡다한 쓰레기를 한꺼번에 쓸어간다. 하물며 농작물이 바짝 타들어가고 식수마저 모자라는 가뭄에는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태풍이 머금었다가 뿌릴 빗줄기만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최근 태풍 '찬홈'과 '린파' '낭카' 등이 잇따라 발생했지만, 중국 상하이 쪽으로 북서진하면서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다소의 비를 뿌리는데 그치자, '야속한 태풍'이란 푸념이 나왔다. 수십 년만의 극심한 가뭄과 녹조에 시달리고 있는 중부지역 등은 스쳐간 태풍이 그저 원망스러운 것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무심히 오가는 태풍에 인간의 심사만 이토록 복잡다단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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