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2, 0, 3, 2, 0'

'2, 0, 3, 2, 0'.

무슨 숫자일까? 무장 공비들이 썼던 난수표일까?

정답을 말하면 김관용 경상북도지사의 지난 5년간(2010~2014년) 연간 개인 휴가 사용 일수다.

직원 휴가를 담당하는 도청 해당 부서의 공식 기록인데 실제 이 일자만큼 다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숫자보다 더 많이 가지는 않았다.

김 도지사는 지난 5년간 휴가를 거의 가지 않았다. 2011년엔 아예 '일 년 내내' 출근을 했고 지난해에도 휴가 없는 만근을 했다.

김 도지사 취임 직후인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 이 기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는 것이 도지사와 오래 지낸 사람들의 얘기다.

"집에서 놀마 머하노?"(사무실에 빨리 나와 일하지) 김 도지사가 휴일에 긴급 간부 회의를 소집하면서 간부 직원들에게 자주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이렇듯 김 도지사는 휴일에 제대로 쉬지 않는 것은 물론, 휴가도 좀처럼 가지 않는다.

"이웃나라인 중국은 하루 만에 다녀오는 등 해외 출장도 최대한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 출장 일수를 최소화합니다. 자리를 비우는 일이 거의 없지요." 도지사 일정을 잡는 공무원들의 얘기다.

도무지 쉬지 않는 김 도지사가 여름 휴가철에 들어선 지난 20일 아침, 도청 간부회의 때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며 간부 공무원들에 대해 업무 수행에서의 분발을 요구한 뒤 한마디를 했다.

"내 눈치 보지 말고 간부들은 계획을 세워 휴가를 다녀오세요."

이날 간부회의 뒤 설왕설래가 있었다. "지사님이 이번에 정말 가시는 건가?" 하지만 대다수 공무원들이 찍은 답은 "지사님은 올해도 안 가실 것"이었다.

올여름 휴가와 관련해 경북도청 공무원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며칠 뒤 우연히 뉴스 한 꼭지를 봤다. 유정복 인천시장 얘기였다.

유 시장은 올해 여름 휴가지로 인천의 섬을 택했다고 한다. 25일부터 이틀 동안 인천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직접 텐트를 치고 하루를 묵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유 시장이 여름 휴가지로 장봉도를 택한 것은 인천시의 올해 역점 추진사업인 '섬 관광 활성화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휴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시장이 출근하지 않는 이틀이 인천시청 공무원들에게는 생긴 셈이다. 시장의 '장봉도 캠핑'은 장봉도를 자연스레 알리는 계기도 될 터.

다른 광역단체장의 휴가 계획도 검색해보니 이시종 충북지사는 "메르스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는 직원들이 휴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자신도 오는 8월 초 닷새 동안의 휴가를 충북도 내에서 보내기로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충북의 이 도지사 언급처럼 지금 전국의 단체장'기업들이 바닥을 기는 내수 살리기를 위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갖고 있어 여름 관광지도 제일 많다고 할 수 있는 경상북도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이달 '고향에서 휴가 보내기' '공직자부터 휴가 가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경북도청 공무원들은 지난 며칠 동안 대구 동성로는 물론, 서울'부산까지 찾아다니며 경북에서 휴가를 보내달라는 읍소를 했다.

단체장 6선(選)의 김 도지사는 6선의 원동력과 관련, "부지런히 현장을 찾았고 현장을 잘 파악한 덕분"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구미시장 시절부터 '일 중독'이라는 얘기를 들은 이유이기도 하다.

6선의 기간 동안 한 번도 여유롭게 가지 못했을 여름휴가. 올해는 경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가족들과 함께 비교적 긴 가족 휴가를 보낼 계획을 '관록의 6선'은 짜고 있는지 모른다. 지난 5년간의 '2, 0, 3, 2, 0'과 다른 일정으로 말이다.

더욱이 올해는 그에게 특별한 해다. 올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족들만 모여 도내 한 성당에서 큰아들의 '소박한 결혼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차츰 불어나는 식구들과 보내는 휴가. 이제 그도 여름 가족휴가를 갈 때가 됐다.

최경철/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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