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서애, 학봉과 일본

일본은 치밀하다. 침략 때 더욱 그렇다. 이유도 잘 붙인다. 우리와 되풀이한 악연은 좋은 사례다. 임진왜란 명분으로 중국 명(明)나라를 칠 테니 길을 빌려달라 했다. 정명가도(征明假道)다. 한 술 더 떠 조선왕에게 길 안내도 맡겼다. 정명향도(征明嚮導)다. 받아들일 리 없지만 그랬다. 납치 조선인에게 말을 배우고 조선지리 염탐으로 지도도 만들었다. 100년이 넘는 일본 전국 통일 과정에서 조총(鳥銃) 같은 신무기도 확보했다. 통일전쟁에서 생긴 넘치는 힘과 무비(武備), 정적의 불만 해소와 제거 등 다목적용 전쟁이었다.

1598년 패전 뒤 300년 가까운 숨 고르기와 무력 양성기를 거쳐 한반도 재침략에 나선 것은 1876년. 오랜 치밀한 사전 음모와 계획 아래 강화도 앞에 첨단 군함을 보내 시비를 걸었다. 조선 수군의 대응에 첨단 대포로 조선을 눌렀다. 강제 강화도조약 뒤 청일전쟁'명성황후 시해'러일전쟁 등 각본에 따라 30년의 침략작전 끝에 1910년 조선을 통째로 삼켰다. 조선 팔도를 무덤으로 만든 7년간의 임란 잔혹사와 2천만 백성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한 35년 식민 암흑사의 배경이다.

일본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1945년 패망 뒤 한국전쟁 덕에 떼돈도 벌고 없어진 군대 대신 자위대도 덤으로 만들었다. 덩치 키우기와 첨단화로 재기를 와신상담하는 데 70년 걸려 지금 다시 타국 '재진출' 준비로 여념 없다. 근거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관련법이다. 개정되면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한다. 명분은 '일본 존립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이다. 옛날처럼 명분은 만들고 꾸미면 된다. 중의원 통과로 참의원 처리만 남았다. 과거와 같이 강경파 아베 총리 입맛대로 될 것 같다.

우리는 잘 잊는다. 수많은 외침의 역사조차. 특히 일본과의 악연에는 '욱'하다 만다. 망각을 기억으로, '욱' 대신 내공 다지기는 말의 성찬에 그친다. 마침 안동에 임란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본격화된다. 안동이 낳은 임란 구국의 영웅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기념사업 관련 예산이 최근 안동시의회를 통과해서다. 2012년 시작됐으니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서애는 전쟁 내내 선조를 도왔고 국보인 '징비록'을 남겨 후세를 경계했다. 학봉은 통신사로 다녀와 임란 이듬해 진주에서 목숨을 바쳤다. 이들을 기리는 임란공원은 안동과 우리 모두의 역사체험 현장이 되는 셈이다. 일제 침략과 도발, 뼈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거울이자 국가안보를 일깨우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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