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나의 드라마

나의 드라마/ 이혜자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

이혜자 시인은 오래전부터 몸에서 피가 만들어지지 않는 희귀병과 싸우고 있다. 이 시집은 저자의 투병 시편들을 담고 있다. '나의 드라마'부터 '너에게 기쁨이라면'까지 모두 69편.

'한때 나의 생 또한 꽃이 만발하였다/ 그리고 단풍이 들었고/ 후두둑 졌고/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침내 주인공이 뛰쳐나간/ 그렇고 그런 드라마가 되었다'('나의 드라마' 전문)

'(전략) 눈들이 웃으며 떠난다/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조금 울었다/ 날려날려 온 눈발을 얹은 나무들/ 너에게 기쁨이라면/ 난, 무거워도 좋다' ('너에게 기쁨이라면')

투병은 어느 누구에게나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병상은 저자에게 소중한 시 쓰기의 공간이 됐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공간에서 저자는 삶의 이면인 죽음을 꽤 자세히 또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경험을 했다. 저자는 시집 서문에서 "늘 새로 쓰고 싶었던 생은 내가 병이 들면서 쓰여지고 있다. 아무것도 쉽게 변하지 않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도 없었다"며 "오히려 내게 온 병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태수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우리 삶은 밝음보다는 어둠에, 기쁨보다는 슬픔에, 희망보다는 절망에 무게가 실린다. 극단적으로 절망하고 또 좌절해야 하는 순간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지점에서 그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꿈도 꾸게 된다"며 "이혜자 시인은 병마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빚어진 어둠, 슬픔, 절망을 시로 기록했다. 아픔과 비극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온전한 생명력을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돋우어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칠곡 출신인 저자는 199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열림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1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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